매일신문

일제강점기 폐교 딛고 한세기 이어온 '영남권 교육 선구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 속으로…

대구가톨릭대의 효시는 1914년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가 사제 양성을 목표로 세운 성유스티노 신학교이다. 1945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까지 5명의 주교를 비롯한 67명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했다.

고 김수환(1922~2009년) 추기경도 성유스티노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대구 남산동에서 출생한 김수환 추기경은 군위 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입학해 2년 과정을 마쳤다.

대구가톨릭대는 1952년 효성여자초급대학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여성 고등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효성여대는 영남권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한강 이남 최고의 여대'로 인정받았다.

특히 1953년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개설한 약학과는 동문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지난해 대한약사회에 신고된 회원 기준으로 대구가톨릭대 출신(효성여대 포함) 약사 회원은 전체 3만813명 중 1천441명으로 4.7%(10위)를 차지했다. 개교와 함께 개설된 3개 학과(국문학과, 가정학과, 음악학과) 중 하나였던 음악학과 역시 영남지역 음악 인재 양성의 메카였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를 비롯해 교수와 교사 등 교육 분야의 동문들이 많다.

이 시기 효성여대 교수 중에는 명사가 많았다. 안중근 의사의 장녀 안현생 여사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간 문학과(불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했다. 당시 교직원의 재직 기록이 담겨 있는 사령원부에는 안 여사뿐 아니라 시인 조지훈, 구상 선생이 교수로 함께 재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80년 6개의 단과대학을 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여자대학으로서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효성여대는 이후 캠퍼스 이전 종합계획에 따라 봉덕동 캠퍼스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하양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한편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1945년 폐교됐던 성유스티노 신학교의 정신을 되살려 사제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선목신학대학을 1982년 건립해 세속 고등교육과 성직자 양성교육이라는 두 축을 굳건하게 세웠다.

이후 1994년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그동안 분리 운영해 오던 두 대학교를 하나로 통합해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를 탄생시켰으며, 2000년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대구가톨릭대는 1990년 의과대학, 1995년 공과대학 신설로 명실 공히 종합대학으로서의 교육기반을 완성하고 발전을 거듭해 현재 전국 11개 가톨릭계 대학 중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2014년 현재 경산 하양과 대구에 3개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14개 단과대학, 10개 학부(21개 전공), 64개 학과에서 1만3천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가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8만7천여 명, 사제는 599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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