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노(60) 씨의 세상은 암흑이다. 빛조차 인지할 수 없는 완전실명 상태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소리로 알려주는 시간이 아니면 몇 시 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혼자서는 화장실만 겨우 가고 식사도 챙겨 먹을 수 없어 활동보조인이 가져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시력을 잃은 뒤에는 안마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지병 때문에 그조차도 할 수 없다. 노동 능력이 없지만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 달 소득이 겨우 5만원이니 본인 돈으로 도시락을 마련해주는 활동보조인이 아니면 굶어 죽을 거야. 삶이 어떻게 이렇게 기구한가 몰라…."
◆범죄 피해로 인해 잃어버린 시력
1990년까지 권 씨의 삶은 평범했다.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고 아내와 딸, 아들 네 식구는 크게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
계속될 것 같던 평범함이 깨진 것은 그해 5월.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권 씨에게 어린 학생이 담배를 빌려달라며 접근했다. 어린 학생이 담배를 찾는 것에 훈계하려던 권 씨의 뒤로 괴한들이 다가왔고, 이들은 권 씨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다. 의도적으로 권 씨의 소지품을 노린 '퍽치기' 일당이었다.
머리에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진 권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료진들은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수술 이후 1년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던 권 씨. 깨어난 것은 기적이었지만 그에게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
"처음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원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도 했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채로 평생 살 바에야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끊임없이 이어진 시련
권 씨의 고통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를 돌봐주던 아내가 떠났고 홀로 큰딸과 작은 아들을 돌봐야 할 처지가 돼버렸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권 씨는 안마기술을 배워 안마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안마업소에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다 5년 전쯤에는 부산 한 안마업소의 '원장'까지 됐다. 원장은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업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실제 경영자가 대신 앞에 내세운 시각장애인이다.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돈을 벌어 가장 노릇을 하겠다는 권 씨의 의지는 또 한 번 부서졌다. 원장으로 있던 안마업소가 불법업소로 적발된 것이다.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업소 때문에 권 씨는 경찰서 유치장까지 오갔다.
"나이가 많아 현장에서 안마하는 일은 안 써줘. 다들 원장으로 데려가려는데 불법인 걸 뻔히 아니까 못하지."
최근에는 머리를 다쳤던 후유증으로 인해 각종 지병에 시달리고 있어 지팡이 없이 혼자서 걷기도 힘겹다. 게다가 열심히 일해왔던 이유인 딸과 아들이 사라졌다. 딸은 결혼 이후 소식을 끊어버렸고, 아들은 이곳저곳 공장에서 일하며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집 안의 전기밥솥, TV 등 각종 살림들을 아버지의 손이 닿지 못하게 천으로 일일이 싸 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까지 보인다. "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이 없고, 아들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아.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내가 장애인이 돼서 자식들이 저렇게 됐다 싶어 마음이 무거워."
◆하루에 한 끼로 영양실조까지
권 씨의 월 수입은 5만원.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매달 지원해주는 금액이다. 근로능력이 전혀 없고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권 씨이지만 국가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권 씨 앞으로 등록된 차량 2대 때문이다. 차량 2대는 권 씨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소유주는 장애인 차량의 장점 때문에 권 씨를 이용한 사람들이다.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기 위해 차량 2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려 했지만, 차량에는 각각 세금 300만원, 1천700만원이 체납돼 있어 권 씨가 이를 지불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폐차조차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이 와중에 올해 초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재계약을 해야 했으나 138만원의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현재는 관리비와 임대료, 도시가스비 등 80만원이 체납된 상황이다.
권 씨는 최근 병원에서 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 활동보조인이 사비를 털어 마련해주는 도시락이 유일한 식사이다 보니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권 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혼자서는 끼니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답답해서다.
"돌봐줄 부인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이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하지. 종교가 없었다면 아마 죽었을지도 모르겠고. 많은 거 바라지도 않아. 그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밥이나마 제대로 챙겨 먹는 거. 그게 왜 이렇게 어렵나 몰라…."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