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몽족의 삶과 애환

밤새 먹고 마신 쓰레기 그냥 태워 독한 연기 가득

◆새해 산제(山祭)

밤에는 인근 도시 '매홍손'에서 아마추어 가수들이 온다. 음악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듯한 10대부터 20대 청년들이 저마다 악기 하나씩을 들고 스무 명 가까이 올라오니 무대가 꽉 찬다. 마을 청년들 몇은 몽족이 가장 많이 살아서 축제를 크게 한다는 라오스로 떠나고, 10여 명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도이 매나이'로 산제를 올리기 위해 출발한다. 깔리양족이 사는 '쿤 맬라노이 마을'과 코끼리 몇 마리가 함께 사는 '매쭝삼 마을'을 지나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길인데 사륜구동차는 계속 올라간다. 수풀을 헤치고 한 시간여를 더 올라가니 놀랍게도 산봉우리 아래까지 길이 나 있다. 청년들은 공기총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새만 보이면 간간이 차를 세우고 누군가는 작은 새를 단 한 방에 잡는다. 봉우리로 오르는 길에 짐을 담은 배낭이나 이런 건 따로 없다. 그냥 자루 양쪽에 줄 두 개를 묶으면 그게 배낭이다. 그들은 샌들 하나만 신고도 덤불 쌓인 숲길을 잘도 헤쳐 간다. 남의 나라로 넘어와 소수민족으로 이 산속에서 질기게 살아가려면 강하지 않으면 안 될 듯, 구릿빛 팔뚝이 뱃사람처럼 억세다. 후아이 펑 마이 학교에서 일하는 몽족 교사는 건너편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는 저곳에서 아편 재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의 악몽처럼 공중에서 고엽제라도 살포한 것일까, 이 밀림 같은 산중에서 그 능선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풀들만 낮게 자라고 있다.

정상에 오르니 타이에서 가장 높은 '도이 인터논'이 멀리 엷은 혼무 속에 홀연히 솟아 있다. 그 너머는 '치앙마이'다. 흩어져 나무를 주워온 사내들은 이내 불을 피우고 아까 잡은 조그만 새를 바나나 잎에 싸 굽는다. 새를 쭉쭉 찢어 먹고 커다란 닭도 한 마리 뚝뚝 잘라 구워 술을 마시는데, 그들 너머 도이 인터논 쪽으로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불태우며 처연한 노을이 진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청년들은 짐승을 쫓기 위해 공기총을 몇 발 쏜다. 멀리서 불빛 하나가 보이는가 싶더니 못내 아쉬운 마을 사람 한 명이 어둠을 헤치고 올라왔는데 그는 만약을 대비해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대부분 모닥불 가에서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운다. 이방인은 텐트 아래 부대를 석 장 깔고 누군가가 준 얇은 담요 한 장 위에 옷을 네 개나 껴입고 자는데도 한기가 올라와 몇 번을 깼다. 옆에 누운 30대 사내는 점퍼에 티 2개를 입고 이불 한 장만 덮고도 잘 잔다. 신기할 정도다. 오전 5시가 넘자 "갓 빤(집에 가자), 갓 빤" 하면서 깨운다. 동이 트는 먼 산이 곱게 물들고 낯선 이방인들 때문에 잠 못 든 새들이 눈을 흘기며 지저귄다.

◆동남아의 환경 현실

아시아의 동쪽에서 남쪽을 따라 길게 내려가다 보면 환경에 대한 현실은 비슷했다. 밤새 먹고 마시던 비닐, 라면 봉지, 페트병 등은 전부 불 속에 넣어 태운다. 우선 보기에는 깨끗할 것 같지만 주위는 순식간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진동한다.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먹고살기가 더 바쁜 그들의 삶이라지만 마을 쓰레기들은 산기슭에 커다랗게 땅을 파서 전부 태워 없앤다. 자욱하게 타다 남은 것들 근처로는 그들도 가기를 꺼린다. 환경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그들이다.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환경 교육은 시급하다. 이 오지 일대만 해도 엄청난 고산족이 몰려 사는데 자연에 대한 이 무지와 오만을 어떡해야 할지. 아시아를 넘어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현실도 거의 비슷할 텐데.

◆하산

아직 어두컴컴한 산길에서 청년들은 이슬을 털면서 매끈거리는 샌들을 싣고 라이트도 없이 잘도 내려간다. 이방인은 등산화를 신고도 허둥지둥한다. 어깨에 공기총을 메고 손에는 날이 퍼런 칼들을 들고 있으니 지리산 공비처럼 섬뜩하다. 먼 산봉우리들이 하나 둘씩 밝아오며 인간의 무지를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제대로 한 해를 잘 보냈느냐"고 묻는 듯도 하다. 세계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억압과 고통받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느냐고 앞산에서 떠오르는 새 해가 묻는 듯하다.

청년들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저마다 보따리 하나씩 메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그 옆에 사는 '찡쯩리' 집으로 갔다. 엄마와 형이 막 밥을 먹고 나오는 부엌, 문도 없고 판자를 대충 세워 막았는데 오랜 세월 연기에 그을려 새카맣다. 그래서 실내는 더욱 어둡다. 새해를 맞은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삶은 돼지고기가 놓여 있다. 그가 살만 골라 접시에 놓으며 밥을 먹으라고 한다. 틈새로 들어온 햇빛이 안을 밝혀주고 장작불 가에 앉아 몽족 차까지 마시고 나니 밤새 얼었던 몸이 녹는 듯하다. 바닥이 마치 리아스식 해안에 울퉁불퉁 융기되어 있는 돌기처럼 솟아올라 반질거린다. 대나무발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홍남(화장실)은 조그맣게 두 개로 나누어 한쪽은 샤워실로 쓰는데 그 옛날 우리네 여인숙 방처럼 조그만 형광등을 가운데에 걸어 양쪽으로 쓴다. 밖으로 나오면 100여m가 조금 넘을 것 같은 산마을 번화가(?)이다. 화려한 설빔을 입은 10대 소녀들이 지나다니고 아래쪽 학교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 마을에 약 200가구 1천300여 명이 산다고 하니 한 집에 5명이 넘는 셈이다. 가겟집 아들이 비닐 쓰레기가 잔뜩 담긴 쓰레기통들을 싣고 마을 뒷산으로 버리러 간다. 학교는 새해 행사 기간 내내 무전기와 공기총을 든 마을 사람이 지킨다. 옆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30세의 사내는 16세에 결혼해 지금 푸이(딸)가 4명이고 푸차이(아들)가 1명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키는 크지 않지만 조숙하고 덩치도 커 보이며 성생활도 결혼도 빨리 한다.

윤재훈(오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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