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반 읽어주는 남자] 봄여름가을겨울 - 1991 라이브

관객들이 박수를 친다. 그런데 연주가 끝난 상황이 아니다. 뮤지션에게 수고했다며 무대 위로 뿌려주는 갈채가 아니라, 연주를 채울 '리듬'을 박수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건 자칫 위험해 보인다. 무대 위의 계획된 연주를 망칠까봐서다. 관객들이 미리 박수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닐테니. 예상되는 풍경은 혼란스러운 박자의 소음.

하지만 오히려 환상의 리듬이 나온다. 그 구성 원리는 이렇다. 관객들 중 박자감이 보통인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정박이 60%. 음악이 좋아 콘서트를 찾은 사람들이니 만큼 리듬감이 뛰어난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30%. 나머지 10%는 박치들이다. 그런데 소수라서 그들의 박수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잔향 역할을 해 전체 박수 소리에 공간감을 불어넣는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일부러 집어넣기도 하는 리버브(reverb'잔향) 효과다.

관객 모두의 박수를 모으니 더 없이 좋은 리듬이 탄생한다. 무대 위의 드러머가 혀를 내두른다. 떼창만큼 멋진 '떼리듬'이다.

김종진(기타'보컬)과 전태관(드럼'퍼커션)으로 구성된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이 세션 연주자들을 이끌고 펼친 첫 콘서트 앨범 '1991 라이브'(1991)를 들었다. 1990년에 가진 서울 63빌딩 컨벤션센터 및 숭의음악당 콘서트 실황 18곡을 수록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네 번 정도 관객들의 센스 있는 '박수 연주'가 나온다.

5번째 곡 '열일곱 스물넷' 도입부에서 명랑한 키보드 반주가 총총 걸음을 시작하자 관객들이 반주에 맞춰 박수를 친다. 박수 물결을 타고 전태관의 드럼이 닻을 '쿵' 올리고 출항한다. 어느 정도 예열이 된 시점에서 콘서트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7번째 곡 '내가 걷는 길'에서는 서정적인 키보드 반주와 함께 김종진이 처량한 느낌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스한 박수로 김종진의 처진 어깨를 덮어준다.

12번째 곡 '거리의 악사'는 늘 뒤에서 묵묵히 리듬을 만드는 드러머와 퍼커션 주자를 조명한다. 중반부쯤부터 드럼과 퍼커션 솔로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박수를 친다. 그러고 보니 솔로 연주에서 하이햇(가벼운 쇳소리를 내는 심벌즈) 소리가 좀 약하다. 보조 리듬이 필요하다. 관객들이 알아서 그와 비슷한 음역대의 소리를 박수로 채운 것이다.

16번째 곡 '내 품에 안기어'는 공식적으로는 콘서트 마지막 곡이다. 이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당연하게 '앙코르'를 외치며 그 구호에 맞춰 박수를 친다. 박수는 퇴장한 뮤지션이 무대에 다시 등장할 때까지 이어지고, 뮤지션이 무대에 선 다음에도 얼마간 여운을 남기며 '다시 나와 줘서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이후 두 곡이 더 이어진다.

콘서트의 묘미는 관객도 뮤지션과 함께 공연의 서사를 쓰는 데 있다. 그 집필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박수다.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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