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붓다'의 나라, 불교의 천국
'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얼마 전까지 멍크(monk'스님)였다. 약 1년 반가량 운수 행각을 하며 순수하게 정진하더니 지금은 한국의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허니문 휴양지 푸껫 바닷가에서 아는 누나가 운영하는 가라오케(노래방) 일을 도와주고 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고 하는 걸 보니 무척이나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왓(절)에서는 항상 대중들이 좋은 음식으로 챙겨주어 대우받았는데, 다시 속세로 나온 그는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그가 더 오랫동안 황금 가사를 입기 바랐다. 그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으며 꼬박꼬박 돈을 부쳐 부모님 집도 지어 드렸다. 그러나 돌아와 아내와 경제 문제로 다투다 헤어졌고, 아이들 둘은 지금 장모님 집에 있다. 나는 그를 태국 북부 1,000m 고지에 있는 산간 마을, '빠이'라는 곳에서 한 스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이곳 역시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오기로 유명하다. 8개월여 타이 북서부 미얀마 국경을 따라, 다시 북동부 라오스 국경을 따라 오토바이 여행을 하면서 '치앙끄랑'이라는 소읍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위파사나(Vippasans) 수행을 하면서 10여 일을 그의 왓에서 보냈었다.
이 나라에서의 입산 제도는 독특하다. 누구나 7번까지 머리를 깎을 수 있으며 오고 감이 자유롭다. 거의 신의 반열에 가까운 왕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모든 사람이 공경한다. 그래서 소수 민족들도 많이 하는 추세이다.
타이야이족(샨족)의 가장 화려한 축제인 멍크가 되는 행사 '보이 상 동'은 그야말로 가문과 마을의 자랑이며 한바탕 축제로 사흘 동안 이어진다. 하기야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세대들이 낯선 이국의 국경을 넘어와 핍박과 차별 속에서 열심히 살다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공경하는 멍크가 된다고 하니 얼마나 자긍심이 크겠는가. 멍크는 차를 타도 맨 앞자리에 앉으며 특히나 여성은 옷깃만 스쳐도 안된다. 한국에서처럼 평생지대사(平生之大事)로 단 한 번뿐인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깨달음을 향해 궁성도 부모 처자도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석가의 뒷그림자같은, 그런 외로운 출가가 아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가세 가세 어서 가세 어서들 가세 저 서쪽 나라로)"
◆53년 전 생긴 마을
뭔가 자꾸 팔을 따끔하게 문다. 그 자리에 금방 피구멍이 보이고 피부가 부풀어 오른다. 삼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몽족 선생이 '쿤'이라고 하며 바르는 모기약을 준다. 이 마을에는 사람의 피를 빠는 모기 같은 흡혈 곤충이 있다. 모기보다 작고 하루살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추운 데 산다고 하며 인근 도시인 매라로이나 매싸리앙에는 없다고 한다. 모기는 더 크고 더운 곳에 살며 장마 기간에 극성이다. 마을에는 모기 포스터가 가끔 붙어 있고 매년 사망자가 많다고 한다.
이 마을엔 맨 처음 3명의 몽족 주민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80가구 정도에 약 800명이 산다고 하니 한 집에 10명 정도가 사는 셈이다. 한 20년 지나면 이 마을도 많이 번화해질 것이라고 한다. 선생은 오지 산간 마을 삼거리에 두 형제가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집을 큼지막하게 2층으로 지어 하나씩 가게를 하고 있으며, 마치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먼 훗날에 기대를 많이 거는 듯하다. 사람은 배운 만큼 그 욕심의 크기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지. 길가에 흔들리는 꽃처럼 우리의 심사도 하루 몇 번씩 얼마나 요동치는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심성들도 산마을에 밀고 들어오는 거센 조류처럼 변해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허해지며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듯하다.
선생의 책상 위에 작은 붓다가 있다. 마을 산 중턱에 교회만 하나 있어 대부분 그곳에 나가는 줄 알았는데, 반 정도는 불교 신도라고 한다. 나란히 붙은 세 가게는 친척간이며 한 집 건너 전부 혈연으로 맺어져 있다.
양쪽 길을 따라 이따금 미니 트럭들이 오고 간다. 트럭을 타고 가던 사람들은 이곳 가게에 들러 800원 하는 꾸이띠야(국수)를 먹거나 가게에서 200원짜리 카놈(과자)을 사 아이들 손에 쥐여준다. 깔람삐(양배추)는 잠시 쉬고 카우폿(옥수수)의 계절도 끝나가고 있는 중이다. 엄청 매운 작은 고추와 방울 토마토가 나오는 철이라 오후가 되면 이런 농산물을 휘어지도록 싣고 포장까지 덮은 채 인근 도시로 떠나는 차량들을 볼 수 있다. 가겟집 큰아들 '야이'는 특히 방울토마토가 돈이 된다고 하며 출발 준비를 한다. 그는 다음 달이면 감자를 수확한다고 들떠 있다. 이 마을에는 두 대의 카우폿 탈곡 기계가 있으며 한 대는 3명의 청년이 동업해서 운영한다.
◆움막집에 사는 신혼부부
28세인 '찡쯩리'와 17세인 그의 색시는 집앞 비탈진 길에 대나무로 움막을 짓고 산다. 그 좁은 방안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짐과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설치하고 한 번도 접지 않은 듯한 흰 모기장과 손바닥만 한 깨진 거울 하나도 있다. 아기가 밟을까 걱정스러운데 신부는 아침마다 그곳에 앳된 얼굴을 비춰보는 모양이다. 신부의 부모님은 여기서 수백 리 길 '치앙마이' 인근 시골 마을에 산다고 한다. 아직 소녀 같은 신부는 한 살배기 아이를 서툴게 키우며 젊은 시부모까지 도우며 욕심 없이 살고 있다. 한창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 간간이 그녀는 200원짜리 과자를 사 동네 길을 오가며 한낮 산간 마을 외로움을 달랜다.
노을 빛이 곱게 물드는 시간, 그녀는 온몸이 농투성이가 되어 남편과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집 앞 가게에서 별미로 꾸이띠야오에 섬뜩하게 매운 고춧가루와 노란 설탕을 듬뿍 타 한 끼 저녁을 맛나게 먹기도 한다. 부모와 형이 집 안에 조그맣게 지은 움막에 판자로 가운데를 막아 부부가 사는데 아이는 어떻게 낳았는지, 둘이나 된다. 마을의 다른 집들도 살림이 대개 엇비슷한데, 돈 벌면 그때 가서 분가한다고 한다.
윤재훈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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