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계남 신작 국내 개인전

"지난 6년, 어떻게 살았는지 남기고 싶었어요"

차계남 작가만큼 항상심을 갖고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작가는 흔치 않다. 차계남 작가가 17일부터 29일까지 동원화랑과 봉산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동원화랑 초청으로 열리는 개인전이지만 차 작가의 작품이 대작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봉산문화회관 전시실까지 빌렸다. 차 작가는 일본에서 활동할 때부터 여성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스케일 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모두 100호 이상 대작들이다. 가장 큰 작품은 7m가 넘는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6년여 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이다. 차 작가가 2009년 독일 칼스루에 아트페어 개인전 이후 새롭게 시작한 작업의 산물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여서 화단에서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흔히 작가는 자신의 존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설익은 작품을 성급하게 발표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정을 중시하는 차 작가에게는 이런 조바심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6년여 동안 묵히고 삭힌 끝에 신작을 들고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차계남 하면 검은색이 연상될 정도로 그녀는 검은색을 좋아한다. 당연히 그녀의 일상과 작품을 지배하는 색도 검은색이다. 차 작가는 "검은색이 자각과 반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명상을 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검은색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곳에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차 작가에게 검은색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색이기도 하다. 2009년 독일 전시를 마친 뒤 그녀가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스로 검은 먹의 세계로 들어간 그녀는 평면 속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고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차 작가는 마의 일종인 '사이잘 삼'을 이용해 거대한 조각을 만드는 입체 작업 대신 화선지를 활용한 평면 작업에 몰입하게 된다. 화선지에 반야심경을 쓴 뒤 이를 1㎝ 간격으로 자른다.

이후 한지를 꼬아 실처럼 만든다. 한지 재료가 준비되면 작은 못을 캔버스에 촘촘히 박는다. 그런 다음 한지 실을 못에 거는 작업을 한다. 수많은 못에 한 올 한 올 한지 실을 거는 작업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해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길이 7.32m 대작은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2시간씩 꼬박 6개월을 투자해 만든 작품이다. 예순을 넘긴 작가가 감당하기 벅찬 중노동이어서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작가는 끊어질 듯한 어깨 통증을 참으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작품이 주는 거대함에 흑백의 대조가 주는 무게감이 더해져 차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위압감이 든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쉽게 작품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차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 친화적이다.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가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관람객들이 관찰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신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한다. 그래서 관람객들을 품을 수 있을 만큼 큰 작품을 만들고 있다.

차 작가가 6년여 만에 신작을 선보인 이유도 관람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녀는 6년여 동안 자신의 감각과 감성을 충족하지 못한 작품 수백 점을 폐기했다. 노역에 가까운 작업 과정을 생각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녀는 작품 앞에서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다.

한지 실을 반복적으로 붙이는 행위가 집적된 차 작가의 작품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 반야심경이 새겨진 한지를 해체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파괴를 통한 창조 활동이다. 그래서 차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입체적 접근이 요구된다.

차 작가는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 많다고 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결혼을 하지 않은 까닭에 남편과 자식도 없지만 자신은 예술과 평생의 연을 맺으면서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그녀가 6년여를 품고 있다 토해낸 열정의 산물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그 과정을 남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작품에는 그녀의 의지와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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