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기술혁신의 원천, 기초과학

기초과학 중요성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821년 전기발전 원리를 처음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 마이클 파라데이의 연구실에 빅토리아 여왕이 방문하였다. 전깃불이 번쩍이는 장면을 보며 "이 위험한 장난감을 어디에 쓸까?"라는 여왕의 질문에, "이 위험한 장난감이 영국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라고 파라데이가 대답한 일화이다. 물리학에서 '파라데이 법칙'으로 알려진 이 전기발전 원리는 그후 인류 최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전기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고 인류문명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이외에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비근한 예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는 원자력혁명을 가져왔고, 반도체물질 발견에 의한 트랜지스터 발명은 20세기 후반 정보기술혁명을 가능케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은 선진국 기술의 모방, 응용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의 CEO를 만나보면 "다른 나라에서 모방할 기술이 없다"라고 하소연할 정도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들었다. 이제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에 이어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의한 혁신적 기술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창의적 기술혁신은 기초과학 연구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모방 및 응용연구에 치중해 왔다. 기초연구 역량강화는 창의적 돌파형 기술혁신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국가과제이다. 현재 한국 기초과학의 양적 수준은 세계 10위권에 이르렀다. 문제는 질적 수준이다. 질적 측면에서는 세계 30위권으로, 매우 뒤져 있어 국가적으로 기초연구 역량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창의적인 기초연구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에게 연구 및 예산집행의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하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32명의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수월성 비결은 바로 연구의 자율성과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도전적 실패'가 예산의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연구 창출의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하에 도전적 실패를 용인해 주는 사회분위기와 평가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우수한 학생들을 이공계 기초연구분야로 유치해 차세대 연구자로 키워야 한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적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뛰어난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기초과학전공 대통령 특별장학생'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한편, 우수한 기초과학 전공 젊은 연구자들에게 장기간 풀뿌리 연구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초과학교육을 강화'확산하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초과학이 튼튼한 인력이 필요하다. 기초과학의 견고한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빠른 기술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추이를 반영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수학, 과학 교육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하여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 과학 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생각할 때 국가 미래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별 없이 기초과학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 MIT에서는 인문상경계열 학생들도 미적분 1년, 물리학 1년, 화학 1학기, 생물 1학기를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디지스트에서는 국내 최초로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를 시행, 학과의 장벽을 뛰어넘어 기초과학 중심의 학부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창의와 혁신을 위한 기초과학 연구 및 교육 강화에 있음을 꼭 지적하고 싶다.

신성철 DGIST 초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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