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연출은 청각적 자극을 시각적 기호들과 엮어, 단순할 수밖에 없는 오페라의 스토리와 인물, 그리고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입체화하는 작업이다. 또 지휘자와 가수, 그리고 무대를 조율해, 연주되는 선율과 리듬과 화성의 미학적 당위성을 증명해내는 일이며, 때로 새로운 관점을 창의적 형식에 담아 매력적인 변주로 제시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제1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장식한 작품 중 개막작 와 폐막작 는 뛰어난 연출력에 힘입어 오페라가 완벽한 종합예술임을 입증한 무대였다.
의 연출 정선영은 오케스트라와 코러스의 미진한 연주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덮은 무채색과 숨어 있는 붉은색의 대조로 베르디의 음악에 담긴 냉혹함과 열정, 증오과 사랑, 복수와 희생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세련되게 전달했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이국적 풍경이 아니라 주제를 담은 세트디자인. 전쟁과 학살의 장면들이 새겨진 회백색 성벽은 투란도트의 세계가 폭력과 파괴를 본질로 삼고 있음을 암시하고, 2막 2장에서 궁궐을 채운 수많은 고층누각과 그를 위태하게 떠받치고 있는 연약한 기둥들을 통해 각각 공주의 오만함과 불통성, 그리고 기어이 무너지고야 말 궁극의 말로를 형상화한 점이다.
무릎을 치게 한 장면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구혼자의 탄원을 뿌리치고 처형을 지시하는 투란도트를 성벽에 비친 그림자로 처리한 1막 도입부. 공주의 잔인함과 신념의 허망함을 시각화하여, 이름에 대한 칼라프의 주문을 '복수는 허상의 감옥이며 사랑만이 진정한 자유의 실체'라는 주제와 연결하는 복선의 역할을 수행한 기막힌 장치였다.
아쉬웠던 점은 3막의 회유장면. 맥 빠진 안무, 무심한 조명, 산만한 배치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극적 반전을 이끌어야 할 류의 죽음과 공주의 회심이 시들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의 매력도 연극적 상상력이 발휘된 연출에 있었다. 칸딘스키와 마티스가 연상되는 세트는 면의 분할과 색의 대비로 선과 악의 대립을 인상적으로 표현했고, 무대장치의 상하좌우 이동을 통해 막을 내리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장면전환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울리히 페터스 표 무대의 미덕은 가족 오페라로 분류되는 의 철학적 깊이와 정치'사회적 함의를 복원했다는 데 있다. 페터스는 검은색을 주조로 한 무대로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적 화려함을 최소화하고, 자라스트로의 구역을 무대 중앙에 배치하여 파미노 커플이 입성하게 될 인본주의적 이상세계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시녀들과 파파게노 커플의 자연스럽고 익살스러운 연기로 경쾌함을 더해 극적 리듬을 살린 점도 눈에 띄었다.
훌륭한 오페라를 올리기 위해서는 연기력을 갖춘 가수와 영감에 찬 지휘자, 그리고 안목 있는 연출가 외에도 문학적 분석을 담당할 드라마터그도 필요하다는 점도 짚어야 할 문제다. 그러고 보면 오페라는 그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비현실성에 매료되고 기만당하는 장식용 예술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분석하고, 기술적으로 계획되고, 미학적'음악적으로 제시된 무대 위의 모든 것을 관객이 해석하고 감상해야 할 도전적 예술임이 분명하다. 그 특별한 경험을 만드는 일은 연출가의 몫이다.
김미정 연출평론가'대경공연예술창의발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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