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류성룡 지음/구지현 역/올재 지식클래식 펴냄
징비록은 '지난 일을 징계(懲)하여 후환을 삼가(毖)는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지냈던 서애 류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쓴 책이다. 국보 제132호로 지정돼 있으며, 지금까지 수십 종이 해역, 출판되었다. 대부분 300쪽 안팎에 류성룡이 한문으로 쓴 원문과 한글 번역, 각종 사진자료 등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에 옮긴이의 해설까지 덧붙인 책도 있다.
올재 지식클래식 판본은 163쪽에, 2천900원으로 다른 해설은 없고, 짧은 각주를 몇 개 달아 이해를 도울 뿐이다. 이처럼 싼 값에 책을 제작,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은 비영리법인 올재의 인문고전, 문화예술 책 보급취지에 삼성과 교보문고 등이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당 5천 권을 한정 판매한다.
'징비록'은 류성룡의 문집인 '서애집'에 실린 16권 7책의 임진왜란 기록을 가리키는 책이다. 임금에게 올린 장계 및 공문서를 기록한 '근포집', '진사록' '군문등록'까지 포함돼 있다. 이 책은 공식문서를 제외하고 '징비록' 상하와 '녹후잡기'를 묶어 번역한 것이다.
징비록은 지난 과오를 두루뭉술하게 반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다.
가령 '조선의 성은 크게 지어 많은 사람을 들일 생각만 했지 지형을 이용한 방어를 고려하지 않았다. 성에는 곡성과 옹성을 두어 화살이 무성하게 날아와도 좌우에서 돌아볼 수 있고, 적이 기어오르려고 성 아래 붙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조선의 성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조선의 성은 口자나 원형 형태로 적이 성벽에 달라붙으면 방어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일본의 성은 '凹凸'처럼 들어가거나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적이 성벽에 달라붙었을 때 방어가 유리하다.
당시 조선의 군사제도인 진관법 체계를 비판하면서 '장수와 병사가 같이 훈련하고, 같이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는 사람 따로, 전투를 지휘하는 사람 따로여서 효과적인 작전을 펼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조선의 군사들이 전혀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음을 통탄한다. 문관이 전투를 지휘하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당시의 참상도 생생하게 전한다.
'왜적이 서울을 점령한 지 2년이나 되었다. 칼날과 화염에 해를 입어 천 리가 황폐해졌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없어 굶어 죽는 이가 태반이었다. 조선팔도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군량을 옮기는 데 지쳤다. 노약자들은 죽어 산골짜기를 메웠고, 장정은 도적이 되었다. 전염병까지 겹쳐 거의 다 죽었다. 심지어 부자나 부부가 서로 잡아먹고 해골이 풀처럼 널려 있는 지경이 되었다.'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도 잘 보여준다. '황급히 서울을 떠난 어가는 굶주림 속에서 길을 재촉했다. (임진강을 건너) 동파역에 도착했는데, 먼저 도착한 파주 목사 허진과 장단 부사 구효연이 임금의 식사를 위해 부엌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어가가 도착했을 때, 굶주린 호위병들이 부엌에 난입해 마구 먹어치웠다. 임금께 바칠 음식마저 없어지려 하자 허진과 구효연은 도망가 버렸다.'
이미 나라가 아니었던 셈이다. 또 서울을 버렸던 임금이 평양성마저 버리고 떠나려 하자 백성들과 아전들이 칼을 휘두르며 길을 막거나 종묘사직의 신주를 길바닥에 떨어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은 대신들을 향해 "너희는 평소에 나라의 녹을 도둑질하더니, 이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속이는구나"며 고함치거나 "성을 버릴 것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속여 성으로 끌어들였느냐? 적의 수중에 먹이로 던져주려는 것이냐?"고 성을 내며 고함을 질렀다.'
류성룡은 전쟁의 참상과 전개상황, 우왕좌왕하는 조선의 모습, 성과 군사의 상태 등을 반성하면서 때때로 구체적인 전술까지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런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후세가 제대로 대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인다.
그런가 하면 전쟁의 징후에 대해 옛 사람다운 인식도 보여준다.
'임진년 갑자기 괴이한 새가 (궁궐) 후원에서 울면서 공중을 날아다니며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 했다. 겨우 한 마리인데, 새의 울음소리가 성안에 가득 차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평양성의 함락에 대해서도 신화적인 이야기를 한다.
'평양에 사는 김내진이 내게 말했다. 1년 전에 승냥이가 자꾸 성안으로 들어왔고, 대동강 물이 붉어졌습니다. 동쪽 물은 매우 탁하고 서쪽 물은 맑더니, 이런 변이 생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양도 함락되었다고 류성룡은 덧붙인다.
주요 인물들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이 천거한 이순신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시각으로, 원균과 신립 등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으로, 명나라의 이여송, 심유경, 진린,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에 대해서도 자신이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이처럼 잘 된 전쟁사는 없다. 국보가 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책이다. 163쪽, 2천900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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