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 밤, 도서정가제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마지막으로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들로 인해 대부분의 온라인서점이 곤욕을 겪었다. 20일 자정 즈음에는 급기야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생기면서 '우리나라의 높은 도서 수요'를 실감케 했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의 해프닝은 아날로그 시대를 대변하는 '종이책'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의 읽기 패턴이 달라졌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으로 읽고, 한 줄 한 줄 순서대로 읽는 형태의 고전적인 읽기 패턴이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중요한 정보만을 찾아 이리저리 훑어보고 건너뛰는 패턴으로 바뀐 것이다. 웹 컨설팅 기업인 닐슨 노먼그룹이 웹페이지를 보는 232명 피실험자의 안구 움직임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처음 한 줄은 다 읽지만 그다음 몇 줄은 절반 정도밖에 읽지 않고 결국 페이지 왼쪽에서 맨 밑까지 수직으로 쭉 쓸어내리는 'F'자형 패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러한 읽기방식은 필요한 정보를 찾기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심층적 독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각종 링크들이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텍스트를 읽으면 활자로만 된 일반 텍스트를 읽었을 때보다 이해력이 저하된다. 이러한 '스마트폰 식 읽기'에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모여 '아날로그식 읽기'를 위한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뉴질랜드 웰링턴의 '슬로 리딩 클럽'(Slow Reading Club)이 시작한 이 운동은 '묵독(silent reading) 파티'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묵독파티'의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마실 것을 주문하고 휴대폰은 전부 끈 다음 편안한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책을 읽는다. 모임의 취지는 잠시라도 전자 기기에서 벗어나 방해 없이 책을 읽는 것뿐이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애써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누가 무슨 책을 읽는지도 상관이 없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책에 집중해 정독 혹은 숙독(focused reading)을 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지만 개인적인 독서를 할 수 있으니 개인적이면서도 함께 하기를 원하는 SNS세대와 궁합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짧은 유행일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식 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책 읽기가 단순히 집중력을 높이거나 개인의 지적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석세스지역 대학의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박사에 따르면 책 읽기는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 된다.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는 음악을 감상할 때는 61퍼센트, 독서를 하면 68퍼센트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면서 책을 읽는 순간부터 6분이 지나면 심장의 맥박 수가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심신이 이완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해소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독서 습관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의 형성을 억제한다는 UC버클리의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독서의 이러한 효과들은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 내용에 몰입하는 독서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 때문에 아날로그식 독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IT 전도사에서 IT 비판자가 된 니컬러스 카 역시 자신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아날로그식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넷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인터넷에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는 게 훨씬 어려워졌다"면서 심지어 "나는 과거의 뇌를 잃어버렸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서를 통한 '깊이 읽기'(Deep Read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날로그식 독서의 효과는 앞서 나열한 것 외에도 많을 것이다. 아니, 효과가 없다면 또 어떠한가? 일상에 쫓겨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식 독서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가 되는 기쁨을 선물할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연말, 바쁜 일상과 챙겨야 할 많은 관계 속에 지친 내 모습이 보인다면, 그런 나에게 나만의 묵독 파티를 선물해 보자. 잠시 동안 휴대폰을 꺼두는 것도 좋겠다. 활자가 선물하는 행간의 여유는 나에게 주는 작지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박은경/한국애드·(주)스토리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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