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19>대구의 종교 박물관, 남산동

종교시설 빼곡한 골목길…박해·순교 흔적 간직한 '신앙의 성지'

불과 10여m 거리에 있는 왼쪽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과 오른쪽 남산교회. 또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남동쪽 100여m 거리에는 사찰인 보현사가 있다. 이처럼 대구 남산동은 서로 다른 종교 시설이 옹기종기 인접해 있는 곳이다.
불과 10여m 거리에 있는 왼쪽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과 오른쪽 남산교회. 또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남동쪽 100여m 거리에는 사찰인 보현사가 있다. 이처럼 대구 남산동은 서로 다른 종교 시설이 옹기종기 인접해 있는 곳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은 오래전부터 대구 사람들의 다양한 신앙이 집적돼 온 곳이다. 큰 종교부터 민간신앙까지, 희한하게도 대구에서는 유독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지금 남산동 골목길을 걸으면 불과 몇 십m 어떤 경우에는 몇m 거리마다 서로 다른 종교의 유적과 시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눈에는 보이지 않은 종교 역사의 흔적도 밀집해 있다. 남산동은 커다란 종교 박물관이다.

◆대구 사람들의 신앙의 땅, 남산동

외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대구의 종교 유적으로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구 제일교회,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계산성당 등이 있다. 모두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달구벌대로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다. 하지만 남쪽에도 꽤 많은 종교 유적이 있다. 달구벌대로 바로 남쪽에 인접한 남산동에 집적해 있다.

남산동은 구릉에 가까운 나지막한 두 개의 산으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아미산과 남산이다. 아미산은 대구를 풍수지리학적으로 바라볼 때 반드시 언급되는 곳이다. 대구의 지맥은 남쪽 비슬산~앞산~수도산~연구산으로 이어진 다음 아미산에서 정점을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은 중국에도 아미산이 있는데, 문수보살과 함께 부처를 보좌하는 보현보살과 관련이 있다. 대구의 아미산에는 1910년 동화사의 도심포교당인 보현사가 들어섰다. '아미'와 '보현'의 어떤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보현사가 아미산에 들어선 것은, 본사인 동화사가 외곽 팔공산에서 대구 중심부로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전략의 하나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교 국가 조선이 빛을 잃어가던 개화기 당시는 기존 종교들과 새로 나타난 종교들이 포교를 두고 경쟁하던 때였다. 현재 보현사 옆에는 대구의 여러 불교 종파가 모인 대구불교총연합회가 들어서 있다. 지금도 대구에서 불교라 하면 팔공산에 있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만큼 중요한 거점이 바로 이곳이라는 얘기다. 또 대구경북 원불교의 중심지인 원불교 대구경북교구청도 인근에 위치해 있다. 그 바로 옆에는 대구 유교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구향교가 있다.

아미산 일대에서는 '무당골'이라는 지명 아닌 지명을 찾을 수 있다. 정식 지명은 아니고 이곳에 워낙 점집과 보살집이 많아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불려온 것이다. 보현사가 들어선 연유에서 알 수 있듯이, 아미산은 대구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영험한 산으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남산동 일대에는 천주교대구대교구청 건물을 중심으로 성모당, 성유스티노신학교,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등 천주교 관련 시설이 모여 있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상돈이 1913년 땅을 기부해 조성된 곳이다. 당시 천주교대구대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가 2층짜리 서양식 벽돌집으로 주교관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천주교 관련 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인근에는 대구에서 제일교회 다음인 두 번째로 1915년에 세워진 개신교 예배당인 남산교회가 있다. 제일교회가 설립된 이후 대구에서 개신교 교세가 확장된 역사를 살펴보려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1910년대는 대구 여러 종교의 도약 시기였다.

◆종교박해와 순교의 현장, 관덕정

남산동에 다양한 종교가 모여든 역사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종교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은 근세(중세와 근대 사이)에 서양에서 유입됐거나 국내에서 새롭게 일어난 종교들은 참혹한 박해를 받았다. 특히 종교박해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순교가 남산동에서 숱하게 벌어졌다. 대구읍성 남문 바로 바깥 관덕정(또는 관덕당)은 대표적인 순교지다.

동학, 지금 이름으로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는 1864년 관덕정에서 처형당했다. 그는 순교했지만 이후 동학사상은 최시형과 손병희 등에게 이어졌고, 1894년 동학은 동학농민혁명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그래서 관덕정 자리는 동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대구 내 최제우 흔적은 인근 대구종로초등학교 내 최제우 나무와 달성공원 내 최제우 동상에도 있다.

관덕정 자리에는 천주교대구대교구가 1991년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을 설립했다. 수많은 천주교인이 역시 이곳에서 순교했기 때문에 세운 시설이다. 관덕정은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에서 서울의 서소문만큼 유명한 처형장이었다. 특히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시복식을 열어 복자가 된 대구대교구 순교자 20위 중 10위(1815년 을해박해 때 7위, 1827년 정해박해 때 3위)가 관덕정에서 죽임을 당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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