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중에서)
예전에 학교에서는 학기 초가 되면 교우도 조사라는 것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3명, 싫어하는 친구 3명을 적어서 내면 교사들은 선택과 배척으로 나누어진 축에 설문조사 내용을 기입해서 통계를 냈다. 선택이 많으면 인기 학생, 선택도 많지만 배척도 약간 있으면 리더형 학생으로 파악하고, 배척이 많거나 선택도 배척도 없는 학생의 경우는 요주의 학생으로 파악하는 식이었다. 교직 첫해 학생부 기획을 하며 학교 전체 통계를 내면서 요주의 학생들의 면면을 보고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조사가 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비교육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보통 반에서 선택은 한 명이 많아도 10표를 넘지 않지만, 배척은 한두 명의 학생이 몰표를 받았다. 그런데 배척을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하는 나쁜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저 눈치가 좀 없고, 선생님들에게 조금 더 인정받으려고 잘 나서는 그런 학생들이었다. 좋게 보면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고, 나쁘게 보면 너무 설친다거나 잘난 척한다거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부류의 학생들이다. 그런데 교우도 조사를 하면서 '나는 저 친구를 싫어한다.'라고 적는 순간 여러 가지로 뒤엉켜 있고, 막연한 상태에 있던 생각은 하나의 확정적인 생각으로 굳어지게 된다. 친구가 발표를 하려고 하면 '열심히 하는구나.'가 아니라 '쟨 또 나서네.'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끼리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왕따를 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서두에 써 놓은 김춘수 시인의 '꽃'은 바로 이런 말이 가진 확정의 힘을 보여준다. '꽃'이라고 부르기 전, 즉 언어로 확정을 하기 전에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몸짓과 같이 확정되지 못하고 막연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행위, 즉 언어로 표현을 하는 순간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며, 호불호의 감정을 유발하는 존재인 '꽃'이 되는 것이다. 만약 교우도 조사를 하면서 좋아하는 친구 3명, 싫어하는 친구 3명이 아니라, 좋아하는 친구를 있는 대로 써 보라고 했으면 교실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친구들도 '나는 저 친구를 좋아한다.'라고 적는 순간 또 다른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으로 40세가 되던 해에 받았던 생애 전환기 검진이라는 것을 받으면서 문진표의 문항에 착잡했던 적이 있다. '모든 일이 괴롭고 귀찮게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홀로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와 같은 물음을 계속 보다 보니, 다 해당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에다가 체크를 하는 순간 조금 돋아난 그 생각이 앞으로의 나를 완전히 지배할 것 같아서 '아니오'에 체크를 했다. 그러자 조금은 덜 우울해지는 것도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 더 긍정적인 말을 하고, 나쁜 것을 단정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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