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우리 동네 '세 자매'

아테나 여신의 청동 방패와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로 무장한 페르세우스가 모험 길에 나선다. 고르고의 세 자매 중 머리카락이 온통 뱀으로 뒤덮인 메두사를 처치하고 그 목을 가져와야 하는 페르세우스. 하지만 그는 메두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메두사의 행방을 아는 것은 오직 그라이아이 세 자매뿐이다. 세 자매에게는 눈이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눈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 하나의 눈알을 서로 돌려가며 자신의 눈에 넣어야 앞을 볼 수 있다.

길가 나무 아래에서 수다를 떠는 그라이아이 세 자매를 만난 페르세우스는 그들이 눈알을 빼 서로 건네는 순간-이때는 누구도 앞을 못 보게 된다-하나뿐인 그들의 눈알을 가로채버린다. 그리고 그들을 협박한다. 메두사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눈알을 용암 속에 던져버리겠다고. 궁지에 몰린 그라이아이 자매들이 할 수 없이 메두사의 행방을 알려주지만 페르세우스는 나중에 그들이 복수할까 봐 눈알을 내던져 버린다.

우스운 얘기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지난여름 내내 그라이아이 세 자매가 앉아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침 운동을 하러 집 뒤 공원에 나가면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앉아 수다를 떠는 세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아침마다 그분들을 만나게 되니 문득, 그리스 신화의 그라이아이 세 자매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입가에 피식 웃음을 띠게 된 것이다. 늘 그 자리 돌계단 아래 나란히 앉아 계시는 모습도 그렇고, 세 분이 앉아 매일매일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는지도 신기했다. 산을 한 바퀴 휘~ 돌아 다시 내려와도 여전히 그 자리에 둘러앉아 계신다.

얼마나 사이좋은 분들이기에 날이면 날마다 같은 장소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도 화수분처럼 또 할 말이 솟아나오는 걸까. 어쩌면 저 할머니들도 그라이아이 세 자매처럼 서로 나눠 가진 하나의 눈으로 세상 일들을 보려고 저리 열심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설 때는 분명히 '몸 운동'을 하러 나오셨을 텐데, 아침 시간 내내 '입 운동'만 하다가 들어가시다니. 약간은 어이없어지다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건강이 몸의 튼튼함도 중요하겠지만, 마음(정신)의 건강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아침 맑은 공기를 쐬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실컷 수다를 떠는 것만큼 정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좋은 것도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네 그라이아이 세 자매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하실 것 같다.

날씨가 차가워져서인지 그분들을 공원에서 뵙지 못한 게 한참 된 것 같다. 요즘도 어디엔가 모여서 입 운동을 계속하시겠지. 공기가 찬 바깥은 아닐지라도. 공원에 못 나오시더라도 건강하게 겨울나시고 내년 봄쯤 세 분 모두 다시 공원 그 자리에서 뵙게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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