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강형기 충북대 교수/향부숙(鄕富塾)대표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제대로 된 분권과 자치를 하라"

사진 이성근 객원 기자
사진 이성근 객원 기자

강형기 교수, 그는 충북대학교 교수다. 청주의 한 귀퉁이, 한적한 곳에 산다. 그 스스로 그를 '촌사람'이라 하고 '시골 무사'라 한다.

이런 그를 전국에서 찾는다.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가 하면 거물 정치인부터 시장, 군수, 그리고 학자와 공무원들이 수시로 그의 집을 찾는다. 그가 꿈꾸는 세상, 즉 분권지향적이고 보다 참여지향적인 세상, 지방 곳곳에서부터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지는 세상, 그래서 너나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그의 말은 때로 쓰다. 상대가 누구든 해야 할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그를 찾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실제로 정보 공개 조례 등 많은 개혁 조치들이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함평 나비축제 등 많은 성공적 지역문화 사업들이 그의 조언과 지도로 이루어졌다.

일본 국립 이바라키대학 조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8년 전부터는 이라는 학습기관을 열어 전국 각지의 공무원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다. 정부의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과 충북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등 많은 책을 썼다. 최근 북경대학은 그의 책 을 중국어로 번역, 발간했다. 복도와 방 모두에 책이 가득한 그의 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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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향부숙 운영한 지 얼마나 됐나?

강형기: 금년이 8년째다. 한 해를 1기로 100명 남짓 모집한다. 1박 2일 10회가 기본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34개 자치단체에서 112명의 지방공무원이 등록했다.

김병준: 몇 차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모두들 열심이더라.

강형기: 승진이나 출세를 해야겠다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일하고 사는 곳을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사람들을 모집한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대구 와서 다시 기차로 영동까지 오고, 거기서 버스 타고 연수원에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열성이다.

김병준: 듣기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공무원은 여전히 '복지부동'에 '무사안일'이다.

강형기: 언젠가 지방자치단체에 강연을 갔는데 마중 나온 공무원에게 가훈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비에 젖은 낙엽처럼 살자'라고 했다. 원래는 다른 것이었는데 업무 감사를 한 번 세게 받고는 빗자루로 쓸어도 쓸려 나가지 않는 '비에 젖은 낙엽'처럼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지만 충격적이었다.

김병준: 사실은 흔히 보는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강형기: 관(官)의 논리와 민(民)의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민간 부문은 일의 결과를 중시한다. 그러나 관, 즉 공공 부문은 다르다. 공정성과 합법성 등을 중시한다. 절차와 과정을 더 따지게 된다는 말이다.

김병준: 목표를 계량화하기 힘드니 더 그런 것 같다. 민간 부문이야 얼마를 팔아 얼마를 벌었는지 물어보면 되지만 공공 부문은 그렇게 물을 수가 없다. 그러니 복잡한 규정을 만들어 일거수일투족, 구석구석을 통제하게 된다.

강형기: 하여간 이러다 보니 사람을 평가하고 보상하는 기준과 방법도 달라진다. 민간 부문은 주로 가점주의, 즉 잘한 것에 대해 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공공 부문은 감점주의, 즉 잘못한 것에 대해 벌을 주는 방식이다. 애써 일을 해도 잘한 것은 뒤로 가고, 그 일을 하는 중에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것으로 불이익을 받는다. '비에 젖은 낙엽처럼 살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병준: 죽으라고 뛰어도 시원찮을 판에…. 정말 문제다.

강형기: 지방행정은 더욱 그렇다. 중앙행정은 종이와 연필로 일하는 체제다. 하지만 지방행정은 현장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뛰어야 한다. 이래 가지고 가슴이 뜨거워지겠나.

김병준: 어떻게 하면 가슴이 뜨거워질까?

강형기: 기본적으로 지방행정의 자기책임성을 강화해 주어야 한다. 즉 되도록 많은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주고, 통제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권력의 주인이자 주권자인 주민이 하도록 해야 한다.

김병준: 이해가 된다. 주인이 아닌 대리인이 관리하게 되면 관리체제가 복잡해진다. 규정과 규칙도 그만큼 더 복잡해지고, 공무원도 그만큼 더 얽매이게 된다.

강형기: 시골 면사무소에 가서 누가 공무원하고 있는지 봐라. 대부분 어릴 적부터 괜찮다고 하던 모범생들이 하고 있다. '복지부동'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시스템이 잘못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런 잘못된 상황에서 공무원들을 풀어 주어야 한다.

김병준: 결국 분권적 체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거야말로 정말 지지부진하다.

강형기: 기본적으로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을 못 믿고 있다. 못 믿겠으니 사무도 권한도 줄 수 없고 통제도 계속해야겠다고 한다.

김병준: 못 믿는다?

강형기: 먹는 물로 이야기하자면 조금 기다리면 오염물질이 가라앉고 자체 정화도 될 텐데 이걸 못 참고 계속 소독약을 타는 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독약, 즉 중앙정부의 통제에 오염물질보다 더한 독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병준: 어떤 독성인가?

강형기: 예컨대 이것저것 모두 중앙정부가 승인하게 되면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은 쉽게 도덕적 해이에 걸린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았으니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민은 중앙정부가 통제를 하니 직접 나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김병준: 중앙정부가 직접 잘 처리하거나, 아니면 통제를 잘 하면 되지 않나?

강형기: 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20년간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는 GNP의 3%대로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중앙정부의 국채는 그 규모가 120배가 늘었다. 중앙정부가 더 잘한다고 할 수 있나? 통제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지방자치단체가 투자를 잘못했다고 야단이고, 청사를 크게 지었다고 야단이다. 그런데 이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한 일이다. 잘하고 있나?

김병준: 이렇게 행정적 분권이 지지부진한 것도 문제지만 정치적 분권도 문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국회의원 등 중앙정치인들이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강형기: 정당공천 문제다.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김병준: 이렇게 분권 문제에 인색한 가운데 지방정부에다 각종의 재정지출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복지재정 분야에서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

강형기: 물어보자. 시골 노인정에 노인들이 식사를 못하고 앉아 있는데 이걸 본 서울 사람이 자장면을 시켜 드렸다. 이 경우 자장면 값을 누가 내야 하나? 당연히 자장면 시킨 사람이 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기초연금을 봐라. 중앙정치인들이 자장면 시키듯 해 놓고서는 자치단체에도 돈을 내라 한다. 자치단체는 말하자면 자장면을 배달하는 '철가방'인데 '철가방'에게 돈을 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체 비용의 38%, 연간 1조5천억원을 '배달꾼'인 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김병준: 미국은 1995년에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강형기: 일본도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부담을 줄 경우 총무성이 앞장서서 조정 중재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게 없다.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 잡는다는 말이 있듯 여의도 국회의원들이 인심 쓰면 지방정부 재정이 축난다. 어디 기초연금뿐인가? 툭하면 지방세인 취득세 깎아준다고 인심 쓰고….

김병준: 문제는 국민이 지방자치와 지방행정을 좀 곱게 봐 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니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권의 이런 행위가 계속되는 것 아니냐?

강형기: 지방자치는 정말 잘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자치단체장들을 보면 늘 이야기한다. 이순신 장군이 언제 왕을 믿고 조정을 믿었더냐. 스스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서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지닌 자원과 가슴속에 있는 열정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그러나 아직 여러모로 미흡하다. 좀 더 잘 뛸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키워야 하고, 또 자랄 때까지 좀 참고 기다려야 한다.

김병준: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올까?

강형기: 정당공천제 폐지가 관건이다. 공천제 때문에 좋은 사람들이 도전을 못한다. 꿈을 키우는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도 공천을 못 받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김병준: 지방의원들은 더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형기: 식당으로 치면 의회는 메뉴를 정하고 단체장은 요리를 한다. 그런데 우리 지방의회는 메뉴 정하는 일은 하지 않고 양념을 얼마나 넣나 따위의 요리하는 일에 간섭을 한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준: 메뉴를 정하지 못한다? 결국 지역사회에 대한 고민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강형기: 좋은 분들, 능력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어야 한다. 언젠가 장군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퇴직 후 고향에 가서 지방의원을 해 보시라고 했다.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 그래서 말했다. 내 집 꽃밭을 가꾸는데 사회적 지위가 무슨 상관이냐? 장군이면 내 집 청소도 안 하나 물었다.

김병준: 문제는 지역사회나 지방자치단체가 내 집같이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형기: 그렇다. 공동체라는 의식이 약하다. 그러니 동네일 하는데도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생각한다.

김병준: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을까?

강형기: 중요한 것은 역시 분권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역사회와 자치단체의 자기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율성과 함께 책임성이 높아지면 공동체 의식도 커지게 된다. 설령 좀 잘못될 수 있어도 그냥 두어야 한다. 뭐든 아픈 경험들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김병준: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말인가?

강형기: 잘못하면 파산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07년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시가 파산했다. 탄광촌을 관광지로 바꾼다면서 한 투자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시장의 견제되지 않은 권한과 회계분식 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이로써 시와 주민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7개 초등학교와 5개의 중학교가 각각 하나로 통합되었다. 공무원은 구조조정되고 심지어 공중화장실도 폐쇄됐다.

김병준: KBS TV 등에서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었다.

강형기: 그러나 생각해 봐라. 이런 경험을 통하여 다들 많은 것을 배웠다. 시장이나 의원 제대로 뽑아야 하고, 주민이 나서서 이들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또 지방행정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병준: 앞서 말씀하신 자정능력(自淨能力)이다.

강형기: 우리는 이런 경험이 없으니, 또 모든 걸 중앙정부가 쥐고 있으니 이래저래 느슨해진다. 일례로 공무원의 능력 향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일부 자치단체는 자격 없는 컨설팅업체에 공무원 교육을 맡긴다. 그러고는 공무원의 노후 준비나 투자 생활 등이나 강의하게 한다. 이래서 되겠는가? 권한도 책임도 없으니 이렇게 느슨해지는 것이다.

김병준: 어쨌든 지방자치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강형기: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30배를 끌고 간다. 여러 개의 다리로 힘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그렇다. 집권적인 정부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주민과 공무원이 가진 자원과 열정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지방정부도 안 된다.

김병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강형기: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 아무리 잘 살아도 자기 스스로 주도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못하다. 취리히 대학의 프라이(Bruno S. Frey) 교수는 분권이 1% 강화되면 국민의 행복도가 3.3% 올라간다고 했다. 권력의 주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제대로 된 분권과 자치를 하라. 오늘의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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