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한국 콘텐츠 무분별한 표절, 대책 없나?

편집·무대 장치까지 대놓고 베끼기 中 예능 표절 한국 스태프 참여 '눈살'

'무한도전'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이어 '히든싱어'까지. 중국의 무분별한 표절로 한국 인기 예능프로그램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방송 콘텐츠의 포맷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희미한 자국 법망의 허점을 이용해 복사하듯 베껴낸 프로그램을 당당하게 내놓고 있어 큰 문제다. 단순히 유사 포맷을 개발하는 수준이 아니라 타이틀은 물론이고 카메라 워크와 편집방식, 무대 디자인까지 똑같이 만들어 물의를 빚고 있다. 정당하게 한국 방송사와 교류하며 포맷을 사들이거나 한-중 공동제작 방식을 채택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뻔뻔하게 베끼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도 "화났다"며 항의하는 것 외엔 딱히 취할 조치가 없어 한숨만 쉰다. 어이없는 일이다.

◆'히든싱어'→'은장적 가수'로, '무한도전'→'극한도전'으로, 부끄러움 모르는 중국

중국의 무분별한 베끼기에 큰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이다. 중국 CCTV1과 중국판 제작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똑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이 나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중국 동방위성TV 등을 통해 방영된 '무한도전'의 표절 버전은 제목도 유사한 '극한도전'이다. 지난 6월 해당 플랫폼을 통해 중국 내 공개됐으며 '무한도전'에서 시도한 여러 특집 중 '극한알바' '나 잡아봐라' 등의 내용을 짜깁기해 '명백한 표절'이란 말을 들었다. 심지어 특정 회차에서는 카메라 앵글과 자막 내용까지 베껴 물의를 빚었다.

CJ E&M도 자사 채널 Mnet을 통해 방송된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도둑맞았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립싱크를 하는 여러 가수 중 진짜 실력자를 찾아내는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히든싱어'의 장점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입혀 만들어낸 음악 예능이다. 중국의 한 방송사와 정식 포맷 판권 판매계약을 마친 콘텐츠다. 하지만 정식 중국판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인 지난 8월,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 두 편이 동시에 중국 내 각각 다른 플랫폼을 통해 방영돼 관계자들을 한숨 쉬게 만들었다. 8월 5일 중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에 공개된 '우적가신아', 그리고 사흘 뒤인 8월 8일 베이징위성TV가 동영상 사이트 여우쿠 등과 합작으로 선보인 '가수시수'가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표절한 두 편의 프로그램이다.

이어 최근에는 JTBC '히든싱어'를 표절한 '은장적 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중국 지상파와 온라인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다. 이후 중국 유력 미디어그룹인 SMG 소속 방송사까지 이 프로그램을 내보내 문제가 됐다. '숨은 가수'라는 뜻의 '은장적 가수'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것이나 세트 구성 및 편집방식까지 똑같이 따라해 명백한 표절임을 알 수 있게 했다. JTBC 측이 중국 최대 영상제작사 화책미디어와 내년 초 방송을 목표로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상만 비교하면 마치 JTBC 세트장과 스태프들을 그대로 빌려 만들어낸 듯 판박이다. 지금껏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표절한 모든 중국 방송 관계자들이 그랬듯 '은장적 가수' 측도 사과 한마디 없이 떳떳하다.

그 외에도 중국의 표절 사례는 넘쳐난다. 지난해 중국 강소위성TV에서 방송된 '다 같이 웃자'라는 뜻을 담은 '이치 라이 샤오바'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램을 론칭해 한국 관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KBS2 TV '개그콘서트' 등 국내 인기 개그프로그램의 코너를 짜깁기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명백한 표절이다.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였던 '시청률의 제왕'을 세트와 캐릭터 설정까지 가져다 써 KBS 관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법적 대응 어려워, "표절 안 했다" 잡아떼면 그걸로 끝

중국의 무분별한 표절이 이어지고 있지만 막상 해당 콘텐츠 원본 작업을 했던 국내 관계자들은 가슴만 치며 답답해할 수밖에 없다. 그저 항의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 외에 타격을 줄 만한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 포맷 카피를 응징할 만한 법적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며, 중국 방송당국 광전총국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표절 프로그램의 방송중단을 이끌어내는 등 행정적 조치를 취하는 게 그나마 직접적인 공격법이다. 단 이 경우에도 한국 방송 관계자들이 바라는 강도 높은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몇 주 정도 방송을 중단하게 만드는 등 사실상 경고 수준의 명령에 그친다. 표절 후 한국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린 베낀 적 없다'고 당당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이유다.

중국 법무법인을 지정해 소송을 진행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승부를 걸어 이길 확률이 미미한데다 국내에서 벌이는 소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포맷을 도둑맞은 원작 관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만 쉰다.

한국에서 중국 대사관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꼴이 된다. 일개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개는 한국 내에서, 또 중국에서 여론몰이를 하며 표절 사실을 알리고 정서에 호소해 행정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몰고 가는 방법을 택한다. 정식으로 포맷 관련 계약을 체결한 중국 파트너사가 있을 경우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연합체계를 갖추고 행동하기도 한다.

'히든싱어'를 표절한 '은장적 가수'에 대한 중국 내 여론도 좋은 편이 아니다. 이미 중국 유력 매체들이 관련 보도를 내보냈고 이 때문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 이들도 늘고 있다. 방송뿐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에 표절이 만연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에 의식 있는 층에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중국 방송계의 포맷 도둑질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적당히 스폰서만 잘 붙이면 예능 한 편으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인 데다 직접적인 법적 제재도 받지 않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눈 한 번 질끈 감아버리면 그만이다. 심지어 정식으로 한국과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해 성과를 거둬들인 경험이 있는 방송사도 때에 따라 표절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변칙적인 행보를 보인다. 베끼기가 워낙 성행하다 보니 도의에 어긋난 일을 하면서도 사안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린 듯하다.

사실 포맷 저작권의 개념은 국내에서도 온전하지 않다. 그래서 각 방송사별로 인기 콘텐츠의 포맷을 차용해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일이 잦다. 또한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 유입이 차단됐던 1980년대에는 한국 PD들도 일본 예능 포맷을 베껴 쓰곤 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국내에 드물었기 때문이다. 앞서 1970년대 충무로에도 일본 영화를 통째로 베끼는 케이스가 많았다. 창피한 일이고 그 '잘못'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다시 돌아와, 결국 표절은 콘텐츠 제작자의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현 중국의 실태는 누가 봐도 똑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표절한 적 없다'고 드러눕는 악질적인 경우라 묵과하기 어렵다. 문화교류가 이뤄지지 않던 시대도 아니고, 인터넷 등으로 전 세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시점에 법망의 허술함을 틈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중국이 한국 프로그램을 표절할 때 해당 콘텐츠의 원본 제작에 참여했던 한국 스태프들이 대거 이 베끼기 작업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 안타깝다. 돈만 된다면 양심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식이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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