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5년 그림과 함께한 '송아당' 간판 내린다

맥향 이은 대구 두 번째 상업화랑, 박춘자 대표 "행복했던 삶의 터전"

송아당 화랑이 3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달 말 간판을 내린다. 송아당 화랑 박춘자 대표.
송아당 화랑이 3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달 말 간판을 내린다. 송아당 화랑 박춘자 대표.

"한평생 그림과 함께 행복하게 잘 보냈습니다."

대구 화랑 역사의 산증인 송아당(松芽堂) 박춘자(75) 대표가 이달 말로 대추나무에 음각으로 새긴 화랑 간판을 내리고 화랑 일에서 손을 뗀다. "1980년 시작했으니 35년 만이네요. 화랑은 삶의 터전이었고 마음의 안식처였어요. 언제나 제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아름다운 친구였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는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박 대표는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고서화와 골동품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는 단번에 반했다.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복사본을 표구해 아들 서재에 걸어놨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어요. 그 후 그림에 푹 빠졌어요."

박 대표는 1980년 '화랑' '갤러리'라는 단어조차 낯설었을 당시 대구 동성로에 송아당 화랑 간판을 내걸었다. 맥향 화랑에 이어 두 번째 상업화랑이었다. 처음에는 고서화만 취급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가 그립습니다. 겸재, 단원, 혜원, 이당 등의 작품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 같으면 간송미술관이나 가야 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1982년 송아당은 고서화 중심에서 현대회화 작품을 주로 취급하는 화랑으로 거듭났다. 주변에선 말렸지만 앞으로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현대회화 시장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 대표는 전속 작가를 두는 등 신진 작가를 키우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의 도움으로 대구를 넘어 전국구로 성장한 작가도 많다.

감투도 많이 썼다. 1991년에는 대구의 첫 문화거리라 할 수 있는 봉산문화거리 조성을 위한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화랑협회 대구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또 글쓰기도 좋아해 작년 화랑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을 적은 수필집 '송아당의 사계'를 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조용히 그만둘까 하다가 '송아당 화랑 35년 고별전'을 16일(월)부터 30일(월)까지 열기로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박 대표는 "먼저 작은 바랑 하나 메고 여행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새와 야생화도 저의 손을 필요로 하고. 글쓰기도 계속 할 거예요. 화랑 일은 그만두지만 할 일은 많아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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