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위안부와 한일협정

"'위안부'로 고통 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일본은 종군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고 우리 정부는 모르겠다고 하니 말이나 됩니까?"

고 김학순 할머니가 서울 중구 정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을 찾은 것은 광복 46주년을 하루 앞둔 1991년 8월 14일이었다. 카메라 앞에 선 김 할머니(당시 67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던 위안부의 국내 실체가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1990년 6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 동원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이 거짓말에 분노해 실명으로 위안부의 실존을 당당히 밝히고 나섰다. 이후 수많은 피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으면서 당당히 일제 만행을 폭로하고 사죄를 요구했다.

일본에서 조선 위안부의 실체가 처음 드러난 것은 이보다 앞선 1972년 6월이었다. 역시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끌려왔던 배봉기 할머니가 고국으로의 강제 추방 공포에 시달리다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한국으로의 강제 추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배 할머니는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일본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일은 10차례 국장급 회의를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일본의 일관된 주장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법적 책임'이 아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주장이다.

난센스다. 일본에서 군 위안부 실체가 드러난 것은 1972년이다. 한국에선 훨씬 늦은 1991년에야 불거졌다. 한·일협정은 1965년에 체결됐다. 실체도 알지 못한 시절에 체결한 한·일 협정이 어찌 위안부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당시 체결한 한·일 협정문 어디에도 종군 위안부 같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조항은 없다. 일본의 억지 주장이 되풀이되면 이미 고인이 된 할머니마저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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