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뭐라고요? 9종 세트라고요?

"스펙 9종 세트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니 3종 세트는 들어봤지만 9종 세트는 또 뭐야?" "학벌, 학점, 토익 3종은 아시죠. 거기에 여섯 가지가 더 있어야 스펙의 완성이죠.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수상 경력, 그리고 마지막이 뭐 게요?" "도무지 모르겠어, 뭐지?" "헤헤, 성형수술, 요즘은 남자들도 면접 잘 보려면 뜯어고쳐야 해요."

"아홉 가지 중에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뭘까? 봉사활동?"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봉사도 나가서 해야지 국내에서 하는 건 쳐 주지 않아요. 다 돈뭉치예요." 아이고, 청년들이 너무 불쌍하다. 돈 없어 연애도 못 한다는 삼포 세대 이야기는 이미 다 아는 거고 스펙 쌓느라 시달리는 청년들에겐 현실이 깜깜할 따름이다.

"샘, 전 학교 졸업하고 나가면 5년 동안 학자금 대출한 것 갚아야 해요.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어요. 청년 신규 취업자 평균 월급이 250만원이라는 통계는 도대체 누가 낸 거예요? 저런 개소리를 누가 믿어요?" 씩씩거리는 청년들의 절규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게으르다니, 인성이 부족하다느니 청년 탓만 하는 건 아닌지.

자본의 총체인 스펙을 요구할 게 아니라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진짜 실력을 쌓도록 해야 할 게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나름대로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역경지수'를 키우는 것과 '배려'의 능력을 높이는 거였다.

역경지수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고난에 맞서는 힘을 갖는 거다. 어차피 살아가는 데는 오만 가지의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인데,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고생하는 힘을 키워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자신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말하는 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는 말이니 이해해 주시라. 하지만 9종 세트를 요구하는 세상은 정말 옳지 않은 것 같다. "뭐라고요? 9종 세트라고요? 스펙이 아닌 실력을 보시라고요." 어느 개그처럼 모두 머리띠를 묶고 '9종 세트 폐지가'를 목청 높여 불러야 할 것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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