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대구시 사람, 경북도 사람

김승수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11일 부임했다. 재밌는 건 경북도 기획조정실장 출신 첫 대구시 행정부시장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대수'가 맞다.

기획조정실장은 시도에서 시장'도지사와 부시장'부지사 바로 아래에서 각종 정책과 예산 등 시도의 살림을 총괄하는 자리다. 이 때문에 도 기조실장을 역임한 경우는 도 행정부지사, 시 기조실장을 거친 사람은 시 행정부시장에 부임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졌다. '대구시 사람', '경북도 사람'이 정해진 것이다.

실제 지방자치 시행 이후 경북도 역대 행정부지사 중에 대구시 기조실장을 역임한 경우는 없다. 경북도 기조실장을 하다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간 경우도 없다. 대구시 행정부시장 중 박병련'조기현'김연수'여희광 등 절반이 시 기조실장을 거쳤다. 경북도 행정부지사도 마찬가지로 이삼걸'이주석'현 김현기 부지사가 경북 기조실장을 역임했다. 김주섭(경도대학장 직무대리)'남효채(포항시장 직무대리)'김용대(구미 부시장)'주낙영(자치행정국장) 등도 경북도나 도내 자치단체 등에선 근무했지만 대구에서의 근무 경험은 없다. 이처럼 시와 도의 고위 인사는 철저히 '따로따로'였다.

그런데 관례처럼 이어져 오던 인사가 이번에 깨졌다. 경북도 기획조정실장 출신이 대구시의 행정부시장으로 온 것이다. 대구시도 처음부터 행정부시장 후보 1순위로 김승수 부시장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고위공무원 인사권을 가진 행정자치부와 협의 끝에 행자부의 권유를 대구시가 받아들였다. 인품과 능력 등 평판이 좋은 김 부시장의 대구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구시 공무원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구시에서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는, 대구의 현안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경북도 사람'이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왔으니 술렁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경북도지사를 가까이에서 모시다가 대구의 2인자로 온 것 자체부터 개운치 않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현안을 두고 부딪힐 때 친정 생각에 부시장으로서의 제 목소리를 다 내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경북도에서 근무했다는 그 똑같은 이유가 기대감을 높이기도 한다. 경북도 핵심 요직에 있었던 만큼 중앙'지역을 넘나드는, 대구에 치우치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와 업무 경험을 가졌다. 또 행정고시 동기 등 절친으로 알려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북도 기조실장을 맡았던 김현기 도 행정부지사와 선의의 경쟁을 벌여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경북의 앞선 홍보 노하우를 대구시가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융통성 없는 대구시가 경북도의 적극적이고 유연한 홍보 마인드를 배울 좋은 기회다. 경북도는 도정을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각 부서에서 기사를 써달라며 적극'공격적인 공세를 펼치지만 대구시는 속된 말로 (경북도가 써달라고 부탁하는 똑같은 사안에 대해) 기사를 '써주겠다'고 해도 주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적잖은 게 사실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함께 추구하고 있는 '대구경북 상생'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북도 기획조정실장을 하면서 도정을 두루 섭렵해 누구보다 경북을 깊이, 많이 알고 있는 만큼 대구와 경북의 가교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지금까지 대구와 경북 사이에 존재했던 '벽'을 허물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인사가 '경북도 사람', '대구시 사람'을 구분하는 관례를 깨는 첫단추가 됐으면 좋겠다. 김승수 부시장이 경북도 근무 경험을 최대한 살려 그동안 대구라는 공간에 갇혀 정체되고 고지식했던 대구시 공직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대구경북 상생의 길을 여는 초대 '대구경북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