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오후 찾아간 서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앞바다 고레(Goree'1978년 유네스코 창립 첫해 세계문화유산 지정)섬. 다카르 해안에서 불과 3㎞, 배로 10여 분 남짓 걸리는 길이 900m, 너비 300m의 작은 섬이었다.
1444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상륙, 아프리카 노예와 아라비아고무'밀랍 등을 거래하는 상업기지가 됐다. 고레라는 이름은 16세기 후반 네덜란드에 잠시 점령됐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국 남부 삼각주 괴레라는 섬과 비슷하다며 그 이름을 따 붙였다.
이곳은 아프리카 사람들로 봐서는 눈물의 섬이자, 아프리카 노예무역, 그 피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장소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1444년 이후, 노예무역 폐지(1815년) 때까지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이 섬으로 붙잡아 들인 뒤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으로 파는 노예 무역기지로 만들었다. 그동안 1천300여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노예로 팔려갔거나 송장이 돼 차디찬 바다에 수장됐다.
노예들이 감금됐던 '노예의 집' 구조는 경악스러운 현장이었다. 29곳에 이르렀다는 노예의 집은 대부분 집으로 개조되고 박물관 형태로 남아 있는 한 곳을 방문했다.
1층은 노예를 수용했고, 2층은 노예 상인들의 거처로 사용됐다. 1층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좁디좁은 공간이었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수용하는 시설로 구분돼 있었고, 말을 듣지 않는 노예를 체벌하는 징벌방도 있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납치돼온 노예들은 팔려가기 전까지 이곳에 갇혀 지내며 서너 평 남짓한 방안에서 수십 명이 쪼그리고 앉아 하루 한 번의 용변만 허용된 채 짐승처럼 살았다. 노예 한 사람의 매매 가격은 당시 거울 한 개를 살 수 있는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거친 파도에다 상어떼로 둘러싸인 고레섬. 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은 노예로 매매되든가, 탈출하다 상어 밥이 되든가 두 가지뿐이었다.
노예라는 단어가 섬뜩하게 다가왔던 고레섬을 나오며 선창 밖을 바라보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 이사장의 책(선진통일전략) 한 페이지가 그려졌다.
1907년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 당시, 대구의 한 여성단체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내놨던 선언문 마지막 구절을 박 이사장은 그의 책에 인용했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나라의 빚을 갚아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민이 되어, 언젠가 우리나라도 세계상등국가가 되기를 희망하노라."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침략이 본격화하던 1907년, 한일합병 불과 3년 전의 암흑천지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사실상 일제의 노예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국채보상운동의 주인공인 대구경북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선조들은 '세계상등국가'를 꿈꾸고 있었다고 박 이사장은 놀라워했다. 나라의 모든 실권을 뺏기고 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그즈음, 우리 민족은 체념과 자포자기가 아니라 세계상등국가 건설이라는 꿈같은 희망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을 벌이며 선조들이 꿨던 꿈, 세계상등국가는 100여 년 만에 그 실현을 앞두고 있다. 식민지 역사를 겪은 나라 중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모두 이뤄내면서 '근대화'를 달성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100여 년 전, 원대한 꿈을 꿨던 민족은 부존자원 하나 없는 좁은 국토에서 맨손으로 경제 기적을 일궈냈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세계 빈곤 구조대 역할도 해내고 있다.
"이 나라에서,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꿈부터 가져야 합니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지난주 세네갈 생루이주 딸바홀레 새마을 시범마을을 방문, 이런 결심부터 권하자 세네갈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 각료들도 "한국을 모델로 꿈을 가지겠다"며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고레섬에 갇힌 이들이 하지 못했던 것. 그들은 꿈꾸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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