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안보 현실 고려하면 합의 긍정적
정부 활동 제한 생겨 시민들이 나설 차례
양심적 일본인 동참 이끄는 노력 중요
우리도 반성해 문제에 관심 더 가져야
법적 책임 인정, 정부 차원의 사죄 표명, 공식적 피해자 배상.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일본에 요구해 온 원칙들이다. 우리 뜻대로 모든 요구 조건을 관철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가능성은 있을까. 정부의 외교력 등은 논외로 하자.
우리가 원칙만 붙들고 있으면 아베 정권은 글렀어도 미래의 일본 정부가 회개(?) 할 날이 올까. 미안하지만 그런 기적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본다. 독일과 달리 일본의 집단기억 속에는 죄의식이 없다. 잔혹한 범죄를 외면하면서 자신들은 피해자 코스프레에 젖어 온 일본인들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었다면 진작 해결되었어야 할 일이다.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는 지금도 일본 측 사죄의 전범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무라야마 총리 등이 사죄의 뜻은 명확히 했어도 최종적 해결을 도모하지는 못했다. 법적인 책임 인정과 피해자 배상은 일본 정치인으로서 가능한 차원을 넘어선다.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인정하는 한국 정치인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방안임을 명시한 사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아쉽다.
상징성과 시급성을 감안해도 그렇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의 전부인 양 다 걸기 해버린 현 정부의 실책이기도 하다. 독도, 역사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외교 문제는 어느 한순간 최종 해결을 선언하기 어려운 진행형 사안들이다. 북한의 핵실험에서 보듯 안보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크다.
어찌 되었건 이미 한일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린 마당이다. 합의 폐기, 재협상 주문은 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다. 따라서 지금은 앞으로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물음을 제기하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다.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천착해 온 한국인들의 활동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지인인 가주한미포럼 황근 실무위원은 위안부 합의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2007년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가 통과되기까지 많은 한인단체들이 애를 써왔다. 미국 동부 지역은 물론 2013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시에 위안부 소녀상 기림비를 설치한 것도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건립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해외 한인단체들이 그렇듯 활동 방향을 놓고 대립해 온 경우가 많았다.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공을 독점하려는 단체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5일(현지시간) 오후 6시부터 글렌데일 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불협화음을 접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물론 일본계 미국인들도 함께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의 활동은 현실적·외교적 제약이 따른다. 국제적 비난을 자제하기로 한 마당에 정부가 나서면 모양만 우스워질 뿐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아무 제약이 없다. 미국, 유럽, 국제기구 등에서 얼마든지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할 수 있다. 정부 간 합의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시민들의 힘으로 위안부 합의 이후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 돈을 받지 않고,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운동이어야 한다. 성노예라는 말에서 보듯 위안부는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님을 국제사회에 주지시켜야 한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잔학행위를 넘어 반인륜적인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임을 알려야 한다. 일본과 일본인을 수치스럽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알려 역사의 되풀이를 막으려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계 후손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길이기도 하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이 문제라면 대구처럼 지역별로 소녀상을 건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안부 문제에 무관심했던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위안부 합의야말로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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