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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돌아갈 고향 있으니 설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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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적
시인 고적

섣달 그믐날 밤

고적

旅館寒燈獨不眠(여관한등독불면)

여관 차가운 등불 홀로 잠을 못 자나니

客心何事轉悽然(객심하사전처연)

내 마음 무슨 일로 점점 더 처연한가

故鄕今夜思千里(고향금야사천리)

고향에선 오늘 밤 천리 밖 날 생각겠지

霜鬢明朝又一年(상빈명조우일년)

아 나는 내일 아침에 또 한 살을 더 먹겠네

원제:[제야작(除夜作, 섣달 그믐날 밤에 지음)]

날마다 한 장씩 찢는 습자지로 만든 달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찢고 찢어도 그 부피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오지도 않은 날들을 네댓 장씩 한꺼번에 찢어내어 코를 확 풀고 쓰레기통 속에다 냅다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섣달 그믐날이 되어서 보면, 어느새 달력에는 마지막 한 장만 달랑 남아 있었다. 차마 아쉬워서 찢어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쳐다보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새해 새 달력이 대기발령 상태에 있었다.

바로 그 섣달 그믐날 밤, 당나라의 시인 고적(高適'707~765)은 천리 타향의 낯선 여관 속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등불조차도 모순 형용의 '차가운 등불'이 깜빡이고 있다. 도무지 잠이 올 리가 없다. 왜 그러냐고? 내일이면 설날인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타향에서 몸부림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천리 타향을 떠돌고 있는 시인을 생각하면서, 남몰래 눈물 흘릴 고향 가족들이 목구멍에 울컥, 그립기 때문이다. 이미 나이를 먹기 싫을 만큼 먹었는데도, 내일 아침이면 또 한 살 더 먹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래저래 서러워서 엉엉 울고 싶은 섣달 그믐날 깊은 밤이다.

내일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 을미년 헌 해는 저물어가고, 불과 이틀 뒤에 병신년 새 해가 떠오른다. 하지만 새 해가 아무리 찬란하게 떠올라도 지금 우리 주변은 너무나도 어둡고 너무나도 춥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 시대라고 떠들어대도 실감 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도 다 포기했다는 5포 세대는 또 먹어야 하는 나이 앞에서 막무가내 흑흑 울고 싶을 게다. 물론 고향에도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자. 어머니가 동구 밖에서 벌써 어제부터 기다리고 계신다. 고향의 품에 안겨 그래도 좀 따뜻한 연휴를 보내면서 잠시 효자가 되어도 보자. 내 아주 간단하게 효자 되는 방법 가르쳐 드리마.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이종문, [효자가 될라 카머-김선굉 시인의 말]) 효자 되는 거, 그거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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