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슈퍼볼이 열렸다. 한 해의 최고 미식축구팀을 뽑는 슈퍼볼은 전미를 들썩거리게 했다. 특히 50주년을 맞은 올해는 평균 600만원의 입장권, 초당 최고 2억원에 달하는 광고, 가수 비욘세의 공연, 챔피언 트로피를 치켜든 덴버 브롱코스의 함박웃음 등 뜨거운 화젯거리를 낳았다. 미국인들의 미식축구에 대한 애정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미식축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활동적인 우리 아들도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뛴 적이 있다. 나는 미식축구가 위험한 운동이고 시간 소모가 커서 공부에 방해받을 것 같아 우려한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미식축구팀의 경험은 이민가정에서 자란 아들과 가족 모두에게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실 나는 미식축구 경기장을 찾은 첫날부터 깜짝 놀랐다. 고교 대항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스타디움은 관중들로 꽉 차 있었고, 밴드에 맞춰 정열적으로 춤추는 치어리더들과 진지한 해설 방송은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경기가 시작되자, 투박한 유니폼과 헬멧을 쓴 거구의 선수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관중은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선수들 중 가장 왜소한 아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전 선수가 잠시 쉴 동안만 뛰고 퇴장하는 선수였고, 4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아들은 주말에 후원금 마련을 위해 미식축구팀 상품권을 팔러 다니기도 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상품권을 사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수고한다면서 용돈까지 덤으로 주어서 아들을 신나게 했다. 또 아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성적이 부진한 친구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미식축구를 계속 할 수 없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기 때문에, 팀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친구에게 열심히 공부를 가르쳤다.
이렇게 서로를 챙기며 실력을 기른 미식축구팀은 마침내 아들이 졸업하는 해에 뉴욕주 챔피언을 눈앞에 둔 준결승전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경기를 앞두고, 치어리더들은 응원 이벤트로, 우리 집 현관에 아들의 이름과 함께 멋진 장식을 몰래 해놓고 갔다. 그러나 이런 응원 속에 치러진 준결승전에서 아들 팀은 한 점 차로 지고 말았다. 그날 선수들은 아쉬워서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 경기를 끝으로 아들은 집에 일찍 돌아왔고, 빈둥거리는 모습이 허허로웠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어느 주말, 학교 측은 미식축구팀 연회를 열었다. 한 해의 활약상을 돌아보며, 수고한 선수들을 소개했다. 아들이 일어서자, 코치는 마지막 준결승전에 지고 돌아온 다음 날,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전화를 건 아들은 조용히 코치에게 "Are you okay?"라고 물었다고 했다. 선수였던 자신도 이렇게 실망스러운데, 코치는 얼마나 낙심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코치는 아들은 뛰어난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리더의 마음,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볼 줄 아는 미식축구팀의 진정한 리더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졸업해서도 선배로서 모교 미식축구의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의미로 미식축구팀 동문회 상을 수여했다.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매년 슈퍼볼 시즌이 되면, 경기에서 우승을 놓친 선수들처럼 인생길을 달리다가 넘어져 좌절하는 이웃들을 생각하게 된다. 초당 2억원짜리 슈퍼볼 광고보다 더 값진 "Are you okay?"라는 안부인사로 서로를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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