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편지: 보고 싶은 형님께

# 보고 싶은 형님께

형님, 올해도 온 들판에는 어느새 모내기가 끝나고 거름을 먹은 모들이 시퍼렇게 꽉 어우러지는 걸 보니 새삼 옛날 생각이 나네요.

형님, 형님 못 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잘 지내시지요? 형님은 아들이 효자라 평안하시리라 믿어요.

형님, 형님과 내가 소싯적에 남편도 없이 혼잣손에 농사지으며 아이들 키울 때 말이어요. 그때 우리는 서로 도우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지요. 하루는 내가 논을 매는데 형님은 집에 손님이 와 막걸리를 받아 가던 길이었지요. 점심때가 훌쩍 지난 시간에 땡볕에 앉아 논을 매는 나를 형님이 발견하고 불렀지요. "동생! 동생!" 하고요. 난 굳어진 몸을 억지로 돌려 형님을 봤는데, 형님은 나더러 나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형님 말대로 나가려고 하자 일어설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형님, 일어설 수가 없어요" 하니 형님은 "그래도 살살 나와봐. 그렇게 오래 쪼그리고 앉아 논을 매니 그렇지"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나가보려 했지만 정말 배가 너무나 고파서 그랬는지 눈앞이 캄캄하고 힘이 없어 일어서질 못하고 억지로 엉금엉금 기어서 형님이 서 있는 논둑으로 올랐지요. 그러자 형님이 주전자 주둥이를 내 입에 대어주며 "이거라도 좀 마시고 집에 들어가. 여태 밥 안 먹고 땡볕에서 일하면 쓰러져" 하는데, 난 꿀떡 꿀떡 꿀떡 꿀떡 네 모금을 마셨더니 눈이 툭 튀어나오고 배가 벌떡 일어나더군요.

배가 부르니 살 것만 같아서, 인제 그만 집에 들어가 점심 먹으라는 형님 말을 뒤로하고 또 논으로 뛰어들어가 논을 매었지요.

그 후 난 형님의 그 고마움이 뼈에 사무쳐 다음 날 형님을 불러 막걸리 한 되를 사서 대접했지요. 그렇게 형님과 난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형님 아우 하며 지냈는데,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러 형님은 아들네로 들어가시고 난 아직도 혼자 지내며 이렇게 철마다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고 있습니다.

형님, 일찍 남편 여의고 혼자 살아오느라 그 고생을 했는데, 자식들 다 짝지워주고 이제 좀 편히 쉬려나 하니 몸이 늙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네요.

형님, 부디 식사 잘하시고, 정신 꼭 가다듬고 지내세요. 나도 형님이 건강해져 다시 집으로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잘 지내고 있을게요. 형님, 우리 꼭 다시 만나 지난날의 회포를 밤새도록 풀어 보십시다.

형님을 좋아하는 동생이.

박재임(상주시 공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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