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년(세종 1년) 6월 20일 이종무를 총사령관으로 한 정벌군은 대마도에 상륙, 항복을 권유했으나 반응이 없자 본격적인 토벌에 나섰다. 병선 227척에 병력이 1만7천300명이나 되는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규모의 해외원정군이었다. 129척의 선박을 소각'포획하고 가옥도 1천940여 채나 불태웠으며, 왜구 104명을 죽이고 21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후에도 왜구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나라의 근심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었다.
원래 대마도는 우리 땅이었다. 에 "(제주도 3분의 1 크기인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으나) 내왕이 불편해 백성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에도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했다. 일본 규슈에서 대마도까지는 147㎞인 데 비해, 비해 부산에서는 49.5㎞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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