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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수상(隨想)] 수크령, 암크령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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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인생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에 단풍 들 듯 어느덧 '인생 가을'이 찾아왔다. 비 내리는 반공일에 고향 찾는 늙정이 되어 우비에 우산을 함께 챙기니 내자가 참견한다. 산 외돌아가는 길은 나를 만나 붙잡는다. 인생 가을 낚을 얘기나 하자고 수크령, 암크령이 소주잔 들고 나를 붙잡아 앉힌다.

천년 고향이 늙은 나를 반기듯 경주 토함산 산봉우리는 흰 삿갓을 쓰고 손님을 맞이한다. 이즈음 조상 찾는 이는 비단 늙정이인 나뿐이겠는가? 이미 추석 전에 파조 묘부터 선대 산소 성묘를 모두 하여 두었다. 그러나 벌써 웃자란 옅은 풀잎들이 고개를 들치고 올라온다.

고향 찾으니 사람들이 어찌도 그리 현명한지 그 옛날 낮도깨비 나오던 곳에 성(性)박물관을 만들어 돈을 번다. 그 곁에 혹시 후손들 산소를 몰라, 못 찾을까 봐 한국형 굽은 소나무 두 그루가 장승백이처럼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향 찾고, 조상 묘 찾음이 좋은 일이면 좋을 텐데, 이미 그곳에는 주변에 알록달록한 펜션들이 갈대꽃 핀 밭두렁 사이로 보인다. 조상묘도 그 펜션에 물들고 있다. 허물어지려는 300년 봉분은 이장 관련 건으로 찾았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마음이 서글프다. 관광지 고향 발전은 좋은데 선산 발복(發福)을 못하고, 개발 논리에 후손들이 돈을 밝힐까 봐 그것이 더 두렵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따라 벌초, 성묘도 했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고 보니 나에게도 인생 가을이 흠뻑 찾아왔네. 십 대 조부 산소는 분명 명당인데 개발자들은 표독스럽게 눈독 들여 자꾸 저네들 욕심의 합의점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종회 젊은이들까지 돈에 맛을 들이려 적극 노력하고 있다.

오기(五基) 무덤 이장하면 대가를 주겠다고 개발자들이 돈으로 유혹한다. 서해안 태안반도 영목항에서 장고도를 바라보는 해넘이보다 더 곱게 이장하여 준다고 사랑 아닌 돈을 갖고 유혹한다. 어이하리. 조상님들 뵙기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오기 무덤을 오기(傲氣)로 안 된다고나 할까? 이런저런 갈등으로 인생 가을을 슬프게도 자꾸 시간을 넘겨 보낸다.

종회사무장을 맡았으니 서류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설득하란다. 대가를 받고 이장하고, 새로운 명당에 모심으로 결정할까? 아니면 그냥 두고 개발금지를 강변(强辯)하는 것으로 결정할까?

선대 묘소 자리를 나와 보불로 분접퇴(粉蝶堆) 어느 식당에 앉았다. 저 멀리 치어다보이는 논두렁마다 수크령, 암크령이 어울리어 보이면서 인생 가을을 추수하듯 대답을 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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