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13>-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

삽화 이태형 화가
삽화 이태형 화가

전국에서 유랑생활

세상 빛을 본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거의 핏덩이였지. 형수와 친척에게 들은 이야기야. 그날 아버지도 놈들에게 잡혀 논에서 죽었어. 시신을 수습할 때 아버지는 희생자들 중간쯤에 있었다더군. 머리는 터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누구 밑에서 자랐는지?"

"겨우 젖을 뗐을 때, 엄마는 재혼했어. 아기일 적엔 숙모가 키웠어. 세 살에 하양 삼촌 집으로 갔고, 다섯 살에 과수원 농사를 짓는 칠곡 이점근 씨 집에 보내졌어. 먹고살기가 어려워 입을 줄이고자 그곳에 보냈던 모양이야. 열다섯에 친구의 꾐에 빠져 경북 봉화에 갔어. 거기서 자장면 배달을 했어. 약 2년 동안 그곳에 머물다, 열일곱에 다시 하양 삼촌 집에 왔지. 나무장사와 어물전을 하는 삼촌을 도왔어. 이내 싫증이 나더군. 칠곡 과수원집에 다시 갔지만, 오래 못 붙어 있었어. 대구 비산동 중국집에 취직하여 우동 빼는 기술을 배웠어. 그것도 잠시뿐이었어. 울릉도에 건너가 고깃배를 타고 어부 노릇을 했지. 스물일곱에 장가들어 제주도로 갔어. 제주도에서는 택시를 몰았어. 목구멍에 풀칠하려다 보니 전국을 내 집같이 돌아다녔어. 역마살이 끼었는지….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인천에 정착하여 환갑 넘어서까지 택시를 몰았어. 지금은 나이가 많아 그냥 놀고 있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형국이었어. 아슬아슬한 순간이 엄청스레 많았지."

"재혼한 어머니를 만나 본 적이 있는지요?"

"꼭 두 번 만났어. 대구 비산동 중국집에 있을 때, 엄마가 나를 찾아왔지."

"엄마를 만나보니 마음은 어땠는지?"

"꿈에 그리던 엄마를 만났지만, 그저 우리 엄마구나… 그 정도였어. 재혼했지만, 행복하지 못한 것 같더라고. 엄마는 마흔도 채우지 못하고 죽었어."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끝 간 데 없이 이어졌다. 작가와 동갑내기지만, 나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67년의 긴 세월을 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대꼈으니. 고생한 흔적이 깊게 팬 주름 속에 진하게 배어 있다. 부모의 그늘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얼마 전, 그는 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새롭게 조성한 반공위령비 추모공원을 보고 싶어 인천에서 천릿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

#33. 최영암(최만석) 35세. 아들 최태달 생후 4개월. 인천

순간적인 기지로 살아났다

안각단 방수만 집에서 또래 여덟 명이 놀고 있었지. 느닷없이 공비들이 침입했어. 친구 네 명은 가마니 틀 옆에 앉아 있었고, 한둘은 새끼를 꼬고 있었어. 손목을 잃은 배재기와 친구 한 명은 선 채로 있었고.

"몇 살이냐?"

"엉겁결에 열네 살이라고 했지. 친구들도 덩달아 열네 살이라고 둘러대더군. 육십 세 이상과 열다섯 살까지는 죽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나는 열여덟 살이었지. 열네 살이란 말이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 곧이곧대로 나이를 밝혔더라면 죽었을 거야. 나보다 나이 적은 배재기는 새끼줄로 묶더라고. 그 친구는 열다섯 살이지만, 덩치가 컸거든. 그는 놈들이 휘두른 칼을 막다가 팔목을 잃었잖아. 나는 앞마당 볏짚 속에 숨었지. 공비들이 물러간 뒤, 형님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버지와 나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형님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했어. 이웃집 정상도 어른이 지게로 옮겼어. 형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어. 온몸이 떨리더라고. 다음 날, 가마니때기로 시신을 감싸 공동묘지에 묻었어. 가족을 위해 머슴살이한 형님이 불쌍했어."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었다. 머슴은 서러웠다. 주인을 잘 만나면 배불리 먹고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머슴을 종처럼 부렸다. 머슴은 상머슴과 꼴머슴이 있었다. 꼴머슴의 새경은 변변찮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헌 옷가지를 얻어 입는 수준이었다.

#34.사망자 최우택 21세. 동생 최금택 18세

도망을 쳤지만

돌아가신 삼촌의 얼굴을 전혀 몰라. 난 지 돌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야. 삼촌은 정미소 마당에 끌려가 온몸에 칼을 맞고 도망쳤어. 집에까지 못 가고 길에 쓰러진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셨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거야. 화마가 초가를 몽땅 삼켜버려 시신을 모실 곳이 없었어. 교회에 안치하고 가마니때기를 덮어 공동묘지에 묻었어. 삼촌은 장가든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작은어머니는 연락되는지?"

"젊은 숙모는 고생을 견디다 못해 팔자를 고쳤어. 어디 사는지 몰라. 연락 끊어진 지 오래됐어."

#35. 사망자 최태문 29세. 큰 조카 최인태

할아버지는 지주이고, 삼촌은 경찰관이라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고 어머니'막내 고모'누나'여동생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 놈들이 집에 불을 질렀어. 어머니는 물동이로 불을 끄기 바빴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와 현장에 갔더니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

"할아버지의 그날의 동선을 알고 있는지요?"

"할아버지는 샘거랑 외가 친척뻘인 박만태 아재 집에 놀러 갔어. 마을이 불바다가 된 것을 확인하고 급히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지. 박송산 어른 담 뒤 샛골목을 이용했어. 바로 맞은편 논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그곳을 피해 논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어. 한 필지 논을 넘어 두 번째 논두렁 아래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시더군. 어머니는 할아버지 주검 위에 이불을 덮어 드렸어."

"할아버지는 신식 어른이었다고 들었는데?"

"할아버지는 미제 장화를 신고 다녔어. 지서에 근무하는 삼촌이 구해 준 신발이야. 나도 가끔 그 신을 신고 골목을 다녔지. 발에 맞지 않아 덜컥덜컥 소리가 났지만, 또래에게 무게를 잡았던 것 같애."

"공비들은 육십 세가 넘으면 죽이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때 할아버지는 예순둘이었어. 돌아가신 분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지. 놈들은 할배를 지주로 분류하고 목숨을 노렸던 것 같애."

"어린 나이에 무척 놀랐겠군요?"

"물론이지. 아직 그때의 또렷한 장면이 떠올라. 다음 날 군경이 진입하여 우리 집에 왔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마당에 반듯이 눕히더군. 볏단을 베개 삼아. 그리고 사진 촬영을 하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 사진을 대구역 광장에 진열했다 하더군. 당국에서는 놈들의 만행을 고발하려고 하지 않았겠어. 삼촌이 그 사진을 보고 크게 분개했다고 하더라고. 막내 삼촌은 능인중학교에 다녔어. 삼촌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며 학도병에 지원했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공비들은 60세 이상 노인과 15세 이하는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장술은 마을에서 농토가 많았다. 경찰관인 둘째 아들은 영천 단포지서에 근무했다. 공산당이 지목한 경찰관, 지주 계급, 두 가지 요건을 갖춘 셈이다. 놈들이 당연히 노렸을 터다.

"아버지는 어떻게 화를 면했는지요?"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경찰관인 삼촌 집에 다니러 갔어. 사건 전에도 우리 집에는 공비들이 자주 내려와 괴롭혔어. 놈들이 올 기미가 보이면 아버지는 숨기 바빴어."

"집은 불타지 않았나요?"

"놈들이 불을 질렀지만, 엄마와 우리 가족이 힘을 모아 불을 껐지. 평화롭게 잠을 자던 참새들도 가쁜 날갯짓을 하더라고. 마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으니 참새도 엄청스레 죽었을 거야."

초가의 처마는 참새들의 보금자리다. 밤이 이슥하면 또래들이 참새 사냥을 한다. 군에서 가져온 기역 자 군용 전등은 훌륭한 무기이다. 처마에 숭숭 뚫린 구멍엔 십중팔구 참새가 웅크리고 있다. 전등불을 비추면 겁에 질린 참새는 도망갈 엄두를 못 낸다. 잽싸게 낚아챌 때면 바르르 떠는 심장 소리가 온몸에 전이된다.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참새요리는 안줏감으로 일품이었다. 이날 밤, 수많은 참새도 비명횡사했으리라.

#36. 사망자 하장술 62세. 손자 하성호 8세. 대구 지산동

박기옥

1949년 경산 와촌 출생. 모리코트상사 대표. 현 경산문인협회 회장. 수필집 '고쳐 지은 제비집' '소금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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