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거지들이 우리 집에 왔다. 그 나름대로 예를 갖추고 온다. 머리에는 남이 쓰다 버린 중절모를 주워 쓰고 온다. 중절모의 둘레를 감고 있는 천을 떼어버리고 가장자리를 푹 눌러쓰면 거지 모자가 된다. 동냥통은 바가지를 쓰다가 전쟁이 나자 깡통으로 바뀐다.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치면 누구라도 나올 텐데 거지 주제에 감히 주인에게 오버할 수 없으니 인기척을 노래로 하였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라는 타령이 들리면 "안녕하세요. 저희들 왔어요"라는 초인종 소리다. "오늘은 없어 그냥 가!"라는 말이 없으면 각설이타령이 시작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일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일선에 계신 우리 낭군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이자나 한잔 들고나 보니 이승만 씨는 대통령 아주사(나는 主事-6급 공무원)는 부통령, 삼자는 삼천만의 우리 민족 대한독립만 기다리네, 사자는 사천이백칠십이년 대한독립이 돌아왔소, 오자는 오천만의 중공군, 중공군도 물리쳤네, 육자는 6'25동란에 집 태우고 문전걸식 웬 말이오, 칠자는 70미리 함포 소리 삼천리 강산을 에워싸네, 팔자는 판문점에 열린 회담 남북 대표가 나오네, 구자는 군대 생활 3년 만에 이등병이 웬 말이오, 장자(십자)는 장하도다 우리 민족 평화통일 이루었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고상하고 애국적인 가사다. 거지들은 노래를 주고 어른들은 밥을 준다. 한번은 총각 거지가 문전에서 우는 목소리로 "밥 좀 주소" 하다가 어른들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얻어먹어도 아침부터 예가 없고 당당하지 못하다고 크게 꾸짖었다. 당시는 남의 애라도 내 자식처럼 교육을 했다.
스님을 비구(比丘)라고도 하는데 거지의 인도말이다. 거지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구도자이며 음유시인이다. 그들은 중생을 복 짓게 해준다. 그래서 당당하다. 고객과 대등하게 거래를 한다. 고객들에게 깡통 박자 맞춰 노래를 불러주고 소설 대목도 흥얼거려 준다. '십전소설'(十錢小說)에 '각설'(却說)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거지들이 이 소설을 타령조로 읽어주다 보니 그들의 이름이 각설이가 된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이 읽어주며(요미) 팔다(우리) 보니 '요미우리'(讀賣)가 된 것처럼 말이다. 원효 스님은 거지타령을 통해 불경을 전파시킨 위대한, 민중불교를 창시한 분이다. 한국의 원조 각설이 대장은 원효 스님이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며 구걸해서 환자 거지를 봉양한 김귀동 거지 왕초, 그리고 거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의 생애를 바친 거지 대장 김춘삼 정도가 자유, 평등, 박애의 실천자 원효의 후계자들일 것이다. 판사가 "가카 새끼 짬뽕" "각하 빅엿"이라는 치기 어린 대사를 외치고, 국회에 선서하러 나온 국회의원이 백바지를 입고 나온다. 게다가 그런 인간들이 인기를 끄는 세상이다. 요즘 부자나 고관대작들 중 거지는커녕 거지 발싸개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 공자는 세상이 하도 '몬도가네'(Mondo cane)가 되어가니까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를 외치며 끙끙 속앓이를 하였다.
대구 종로에 있는 화교소학교에 가보라.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벽에 관자의 말인 '禮義廉恥'(예의염치:예절'의리'청렴'부끄러움)라는 사유(四維)를 써 놓았다. 중국인들은 사유를 모르는 인간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각설이는 아리랑처럼 지방마다 다른 버전들이 있다. 웬일인지 각설이 공연장에 대구 버전은 없다. 대구 각설이타령은 정말 대구다운 시어를 쓰고 있다. 반월당은 종교의 메카다. 보현사가 있고 남산교회가 있고 관덕정이 있다. 제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지금 내가 인간의 길로 가고 있는지 축생의 길로 가고 있는지 대구 각설이타령을 독송하면서 묵상하여 아귀 지옥을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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