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연극인들의 성추문 사태가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연극단체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 이윤택 연출가부터 시작해 목화의 오태석, 배우 조민기와 오달수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이들의 만행이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연극계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 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부분을 문제라 인식하면서도 해결의 태도를 보여주진 않았다. 여러 언론을 통해 언급되었지만 피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한국 문화계를 주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문화계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쉽게 그들의 행위를 문제 삼거나 제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난해 겨울 미국에서 시작된 성추문 폭로 운동, '미투(Me-too) 운동'은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행태를 고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미국 영화계의 로비스트로 불리며 자신이 업계에 끼치는 힘을 이용해 꿈을 갖고 입성한 배우 지망생과 스태프들을 성적 도구로 쓰거나 이용했다. 이런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거쳐야 하는 관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레 스며든 관행은 악습이 되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기득권자로 군림한 자들이다. 한 개인이 소수의 인권을 침범해 자신의 쾌락을 쟁취한 것은 힘이 있는 자들만이 가능한 행위였다. 우리 사회는 시대적문화적으로 그들의 행태에 반기를 들 수 없게 만드는 암묵적 용인을 허용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윤택 연출가가 기자회견에서 표명한 입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8년간 진행되어 온 관습적인 일이다."
이도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개인에게는 관습일 수 있지만, 피해자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한 폭력이다. 힘이 없는 개인이 강자 앞에서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게 만들고, 작은 소리라도 포착된다면 존재를 압살하고 사장시키는 강력한 힘. 그들은 동료를 동료라 칭하지 않고 위선을 치장했다. 그들의 치명적인 착오는 보수적 관행이 악습이 된 채 여성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침해했다는 점에 있다.
나 또한 이윤택 연출에게 빚이 있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서 기회를 얻었고,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사상과 철학, 특히 연극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울 순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상은 '연극하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였다. 이제 그 말은 모순이 되었다. 그가 말한 인간은 타인이 아닌 타자였다. 이후의 세대에게 이런 악습적 관행이 더이상 되물림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가지며 살아가는 무명 배우들은 극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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