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 번개에서 불을 훔쳤다. 훔친 불을 인간에게 주었다. 제우스는 크게 화냈다. 암벽에 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벌을 받았다. 인간도 불을 얻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제우스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인류 최초 여성)를 만들었다. 그녀의 손엔 유혹의 상자가 한 개 들렸다. 상자를 열자 재앙이 쏟아졌다. 상자 안 유일한 선이었던 '희망'이 함께 나와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얘기다. 그가 평창에서 활활 타오른 불을 봤다면 어땠을까.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는 꺼졌지만 평창의 불은 국민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 불은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도 급속도로 녹였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방남했고 남북정상 회담도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양손을 맞잡은 장면도 그려진다. '평창'으로 '평화'가 열린 듯 보인다.
하지만 평창이 낳은 평화 무드가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평창의 평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는 당장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가 보수를 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진보가 놓칠 리 없다. 평창 다음에 펼쳐질 남북한 화해 이벤트는 다가올 지선과 맞물려 평창의 불꽃보다 더 화려하고, 성대하게 타오를 게 분명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진보가 불평한 북풍(北風)이 이제는 보수에서 막아내야 하는 부메랑이 됐다. 문제는 지금의 보수로는 방풍림 한 그루도 심지 못한다는 데 있다. 탄핵 사태 이후 갈라선 보수의 분열이 여전한 데다 바른미래당의 출범으로 서로 으르렁대는 형국만 짙어진 까닭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선에서 안철수·유승민을 확실히 밟아버리겠다고 벼른다. 안·유도 한국당을 선거 패배로 몰아 홍을 쫓아내겠다고 맞불을 놓는다. 4개월 뒤 홍·안·유가 손을 맞잡을 가능성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얼싸안을 확률보다 낮다.
보수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방남을 빌미로 북풍을 차단해 보려 하지만 결과는 '글쎄올시다'다. 통일대교에 당원 동원령을 내려 '산성'을 쌓아 본들 국민 눈에는 반짝 이벤트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거치면서 보수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기 때문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상자 안에는 당리당략과 분열, 사리사욕만 있고 보수의 통합과 단결이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홍 대표가 비록 지난 대선에서 25%의 국민 지지로 한국당 횃불을 훔치긴 했으나 크게 지피지는 못했다. 거친 입은 오히려 보수의 불을 화톳불 수준으로 쪼그라뜨렸다. 횃불이 새겨진 한국당 간판을 내건다고 보수의 불이 저절로 타오를리 만무하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수의 운명을 결정지을 지방선거는 성큼성큼 다가오지만 보수는 지리멸렬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제각각 보수의 적자임을 내세워 후보를 내면 수도권은 물론 영남에서조차 승리가 어렵다. 이래가지고서야 평화의 가면을 쓰고 배 속에 핵을 숨긴 북한을 어찌 막겠는가.
현명한 국민이 '희망'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부터 버리자. '국민'이라는 큰 틀에서 투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촛불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듯 지선을 통해 문 정부를 평가해야 한다. 홍준표가 싫고 안철수와 유승민이 미워도 문 정부의 대북 방향등이 '아니다' 싶으면 불신임해야 한다. 박근혜 전 정부와 보수에 실망해서 촛불을 들었을지언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새 길을 찾아야 한다.
평창의 '영미!영미!'가 가져온 외관상의 평화가 언제든 '헬미(help!美)'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이 (평화의) 불을 훔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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