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현대 의과대학의 성장

최근 폐교된 한 의과대학 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보건복지부가 국립공공의과대학을 남원에 설립하기로 하면서다. 의대의 시도별 균형 설립이라는 정책이 나쁘다 할 수 없고, 공공의료대학이라는 취지도 훌륭하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사는 의도하거나 기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매년 학생 50명을 받아 의사를 양성하는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사실은 이런 시행착오를 우리나라만 겪은 것도 아니었다.

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것이다. 과학과 결합한 현대의학, 특히 현대의학 교육 제도는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겠지만 19세기까지는 전통적인 약초학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전수되는 학문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 혼돈의 시기에 두 명의 플렉스너가 활약한다. 사이먼과 아브라함 플렉스너 형제가 그들이다.

비과학적 구습에서 탈피한 사이먼 플렉스너는 이질균을 동정(이름을 밝히는 것)해 내고, 소아마비 바이러스 항체를 발견했다. 일본 지폐 1천엔에 얼굴이 새겨진 노구치 히데요가 찾아간 인물이 바로 이 플렉스너다.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조직의 특성을 찾아내거나, X선으로 몸의 내부를 살피고 병균을 동정해 내는 등 '과학적 논리 체계의 현대의학'이 이때 정립된다.

사이먼의 동생 아브라함은 교육자였다. 카네기재단 연구자 시절 그는 미국의사협회로부터 의과대학 실태조사를 요청받았고, 북미 지역 155개 의과대학을 전수조사해 결과물을 내놓는데 그게 유명한 '플렉스너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의과대학 및 고등교육 제도를 개혁하는 데 혁혁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보고서는 의과대학이 경험에 기초한 지식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과학에 기반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였다. 비과학적 의술은 교육과정에서 삭제되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은 분리할 수 없는 방패의 앞뒷면이라 주장하였다. 의학교육에서 임상 실습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의대와 대학병원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존스 홉킨스 의대를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하였다.

이후 미국 의대는 기초과학 연구, 임상학문 교육, 그리고 병원에서의 진료가 삼위일체를 이루게 되었다. 보고서는 북미 지역 155개 의과대학에서 부실 의대를 퇴출해 31개로 축소시킬 것을 제안하였으며, 미국의사협회는 이를 기반으로 절반 이상의 의과대학을 퇴출 또는 통폐합시켰다. 그 후 의과대학의 수는 인구 증가와 함께 147개로 증가하였지만, 학생 수는 평균 135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 의과대학 수를 늘려왔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해 대학 수는 많고 규모는 작다. 41개 대학에 학생 수가 75명 정도인데, 특히 신생 의대는 정원이 50명 미만이다. 임상 실습이 이뤄져야 할 대학병원도 규모가 작다. 교수가 비전공 과목을 학생에게 가르치거나, 이웃 대학에서 교수를 빌려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대만 세우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파악한다면 부실 의대를 하나 더 만들 뿐이다. 이미 100년 전에 플렉스너 보고서는 의학교육은 기초학문 연구와 임상진료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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