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포스코그룹 회장의 조건

포스코의 본사 주소는 포항이다. 서울 테헤란로에 번듯한 사옥이 있는데 정식 명칭은 서울사무소다. 하지만 포스코의 모든 결정은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진다. 당연히 회장과 주요 임원들은 서울에 상주한다. 이 때문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포스코인들도 본사는 서울에 있다고 여긴다.

이러다 보니 역대 회장들은 포항을 '공장이 있으니 어쩌다 한번 들르는 곳'으로 인식했다. 권오준 현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다시 새 임기를 시작했지만 포항은 단순히 공장이 있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 그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의 언론인들을 대거 대동하고 지난 3월 30일 포항을 방문했다. 공장을 돌면서 자신의 업적을 세세히 설명한 그는 다음 날 열린 기념식에서 성대한 포부를 밝혔다. 사람들은 그가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킨 채 남은 임기동안 포스코를 의욕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포스코 태생지 포항에서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불과 18일 만에 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당연히 정치권과 기업 안팎에선 정권 외압설이 난무한다. 정권이 바뀌면 수장이 쫓겨난 포스코의 흑역사가 어김없이 재현됐다고 본다. 포스코를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정권이 문제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포스코는 창립 이후 지난 50년 동안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에 이어 현 권오준 회장까지 8명의 회장을 배출했고, 이들은 모두 정권 교체를 전후해 불명예 퇴진했다. 권오준 현 회장 역시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퇴진설을 달고 다녔다.

그런데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보자. 과연 역대 포스코 회장들의 진퇴에 대한 책임이 정부나 정권에만 있을까. 포스코는 떳떳하고, 포스코 경영진은 당당했는데 정권이 무리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탓일까.

기자가 포항에서 2년, 서울에서 3년을 근무하면서 직접 포스코인들을 만나거나 전해 들은 바를 종합하면 정치권력만큼이나 포스코 경영진에도 문제가 많았다. 핵심 임원들이 먼저 정치권력에 손을 내밀었거나 권력 뒤에 줄 선 정황은 너무 많다. 정기인사철이나 주주총회를 앞두고 임원들이 정치권 인사 사무실을 드나든다는 얘기는 내부 구성원이면 다 안다. 주요 보직자 선임에도 정치인들의 결재 아닌 결재를 받는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유력 정치인과 약간의 친분만 있다고 소문나면 속된 말로 포스코가 '알아서 기는' 일은 다반사다.

협력업체 경영진 선정 때도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가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과 먼저 의논하는 것을 관행처럼 여겼다. '지역협력'을 명분으로 국회의원이 추천한 사람을 협력업체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포항 유지들 중 포스코에서 뭔가 이권사업 하나 챙기지 않으면 그 사람이 이상할 정도라는 냉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의원이나 정치인 중에도 포스코 협력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회삿돈 빼먹는 정치인보다 돈과 이권을 자진 상납하는 임원들이 더 나쁘다"는 직원들의 자조에 포스코 고위층은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현재 서울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중심이 된 'CEO 승계 카운슬'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 빠르면 이달 중에 CEO가 결정될 수 있다. 새로 선임된 CEO의 사명은 막중하다. 정권의 압력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임원들의 정치권 줄서기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포스코는 특정 세력이나 정권의 소유물이 아닌 국민기업이다. 새 CEO가 국민 여망을 등에 업고서 서울사무소가 아닌 포항 본사에서 정치권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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