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골목 속 활자를 모아봤습니다. 신문은 더이상 조판실(원고에 따라 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의 지시대로 맞추어 짜는 일을 하는 방)에서 활자를 모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골목에는 카메라로 모을만한 활자가 적잖습니다.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활자들이면서, 골목에 여전히 살아있는 활자들입니다. 가게는 사라졌지만 간판이 그대로 남은 사례도 있고, 간판은 낡았어도 가게는 성업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고, 골목의 저력을 드러내기도 하는 활자들입니다. 또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의 활자이기도 할 것입니다.




골목 대표 업종은 아무래도 슈퍼(또는 수퍼, 여기에 '마켓'이나 '마켙'이 붙기도 합니다.)입니다. 지난 세기 점빵으로, 구멍가게로, 상회로 불리다 슈퍼가 됐습니다. 그러다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또 골목 안으로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편의점으로 변신한 슈퍼들이 있기는 합니다.



옛적엔 쌀집도 많았는데, 역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젠 쌀 소비량도 줄고(2017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역대 최저치 기록), 이런저런 마트도 골목 곳곳에 생겼으며, 젊은이들은 즉석밥 제품도 많이 찾고 있어 그렇게 자리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낡은 간판만 남은듯 합니다. 물론 여전히 쌀을 파는(사는) 구멍가게가 적잖게 있습니다. 동네의 터줏대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당포도 예전만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식 전당포는 줄고, 그 자리를 아이티(IT) 전당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옛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전당포에 저당 잡히는 대표 물품은 '손목시계'와 '금반지'입니다. 요즘 IT 전당포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디지털카메라 같은 각종 IT기기까지 받습니다.





다방은 카페전성시대가 됐기에 사라지는 듯했지만 대구의 경우 원래 많던 북성로·향촌동 등지에 여전하고, 비산동에서는 일부 다방이 치열한 불법 경쟁까지 할 정도로 틈새에서 나름의 방식들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전파사와 전업사는 동네마다 전축, 워크맨 같은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브라운관TV 같은 가전제품이 어디가 아프든 '뚝딱' 고쳐주는 '맥가이버'(1980~9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미국 드라마, 같은 이름의 주인공은 어떤 기계든 척척 고쳐 위기를 극복) 아저씨가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집 가전제품 주치의가 동네마다 있었던 셈입니다.



비디오 가게도 동네마다 있었습니다. 삼촌은 주윤발이 성냥과 악당을 함께 씹어먹는 액션영화를, 형은 헐크 호건과 얼티밋 워리어가 등장하는 미국 프로레슬링 비디오를, 동생은 후레쉬맨이며 바이오맨 같은 전대물 비디오를 빌려봤습니다. 비디오 가게와 함께 그들의 여가시간을 채워준 만화방은 요즘 부활하는 모양새인데, 비디오 가게는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해 아쉽습니다. 비디오 전성시대의 종말을 사랑과 이별로 은유한 대구 독립영화 '은하비디오'에는 간판을 내리는 비디오 가게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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