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패망은 계백장군을 출현시켰고, 신라의 멸망은 마의태자를 낳았다. 그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가 '추억의 백마강'과 '신라의 달밤'이다. 고려의 종말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이라는 탄성을 자아냈고, 일제강점기에는 '황성옛터'라는 대중가요의 절창으로 나라 잃은 설움이 중첩되었다. 망국(亡國)의 한(恨)은 숱한 시문과 음률로 대중의 가슴에 슬픔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확산시킨다.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그렇고, 안동 출신의 항일시인 이육사의 '절정'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초극의 의지를 드러낸다.
중국의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나라가 무너져도 산하는 그대로이고,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로 시작하는 춘망(春望)이란 시로 참혹한 전란 속에 찾아온 봄날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역시 당나라 시인인 두목(杜牧)은 남북조시대 진(陳)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다가 '진회에 배를 대고'(泊秦淮)라는 시를 남겼다. '진회'란 진나라의 수도가 있던 오늘날 난징(南京) 주변의 강을 말한다. 그중 '술집 여인들은 망국의 설움을 알지 못하고, 강 건너에서 아직도 후정화를 부르는구나'(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후정화' (後庭花)란 진나라의 왕이 나라가 기울어가는 것도 모르고 주색에 빠져 지어 부르던 악곡이었다.
어떤 원인에서든 망국은 깊은 여한을 드리우기 마련이다. 어디 나라뿐이겠는가. 기업이나 조직이나 가정 또한 파산과 파탄의 여파는 함께했던 구성원들의 가슴에 쉬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더러는 망해서 거듭나는 조직도 있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위인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조직이나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자유한국당의 처지가 딱하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이렇다 할 처방마저 없는데, 아직도 무슨 미련 때문인지 죽지도 못하는 모순의 늪에 빠져 있다. 이젠 일락서산(日落西山) 황혼조차 사위어가는데, 망당(亡黨)의 주역들은 아직도 후정화가 그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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