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여름방학, 우린 백두대간수목원으로 갑니다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만나러 가즈아
땡볕만 아니면 대구와 기온차 있어 피서 효과도

불볕더위에 호랑이가 그늘막아래서 지쳐 누워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강원남도 봉화군 춘양면. 산 하나만 넘으면 하이원리조트가 나오고, 2km만 더 가면 강원도 행정구역으로 들어서고,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답게 산세도 경북 내륙의 여느 산들과 다르고. 정감록에서 흉년, 전염병 전쟁이 없다는 십승지 중 한 곳으로 꼽은, 아차, 경북 봉화군 춘양면이다.

※들어가기 전에(알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크게 생태탐방지구와 중점시설지구로 나뉜다. 생태탐방지구는 매우 길고, 넓고, 깊어 마음먹고 몇날며칠을 잡지 않으면 완주하기 어렵기에 따로 소개하지 않는다. 지면으로 소개할 곳은 중점시설지구다. 그중 지하터널형 야생 종자 저장시설인 시드볼트(종자금고)는 수목원의 트레이드마크라고는 하나 일반인에 개방되지 않는다.

지도에서 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지리적 특성상 피서지로 적당해 보였다. 지대도 해발 500미터로 높고, 대구에서 2시간 30분 거리의 북쪽에 있기에 어느 정도 서늘한 기운이 있을 거란 비감정적 선입견이었다. 그러나 춘양의 낮 최고기온은 35도였고 대구의 39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불볕더위였다. 하필 찾아간 날이 중복(7월 27일)이었다.

그나마 위안은 수목에 둘러싸인 그늘 효과였다. 숲 속 온도계는 섭씨 32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정도껏 더워야 수목원 산림과 특이 수종들이 실력을 뽐낼 수 있을 터. 워낙에 더우니 대책이 없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가을에야 오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쏟아내며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트램만 목 빠지게 기다렸고, 넓디넓은 수목원을 걷는 이는 없었다. 이 지역주민들의 오랜 경험치에 의존하자면 불볕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입추(8월 7일) 전후로는 공기가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할 만했다.

그럼, 이 땡볕더위에 관람객들은 왜 여기 온 걸까.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호랑이가 목적인 듯했다. 아무리 더워도 이들은 호랑이 우리에 왕림했고, 하인 부르듯 호랑이를 불러댔다. "이리 오너라" 대신, "어이~"라고 길게 목을 빼 불렀고 호랑이는 털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로 누운 자세를 유지했다. 어르고 달래듯 말투를 고쳐 "일어나줘 봐"라고 읍소하는 투도 들렸으나 호랑이의 상전 본성은 갑을관계 어휘 변화 따위와 상관없었다.

관람객들이 잠이 든 호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불볕더위에 호랑이가 그늘막아래서 지쳐 누워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30분 다큐멘터리'-7월 27일 오후 2시 호랑이 우리 앞 실제 상황(괄호 안은 상황 설명)

"어이~" (또 한 무리의 관람객이 온다는 알림음이다. 호랑이 우리 앞에 도착한 이들의 십중팔구는 '어이~'로 호랑이를 부른다.)

"(울타리 역할을 하는 쇠봉을 두드리며) 야야~ 일나라." (누가 가르쳐준 것도, 매뉴얼에 있는 것도 아닌데 관람객들은 오래된 습관인양 이렇게 호랑이의 관심을 끌려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비유가 아닌 현실이라면 호랑이는 분명 3년 뒤 '야야~ 일나라(Hey, Wake up)'를 알아들을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건지, 권고문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못 봤을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우리에는 '호랑이는 예민한 동물입니다. 조용히 지켜봐 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시원한 데 누워있네." (호랑이들은 각각의 휴식처에 있는 그늘에 모로 누워 있다.)

"주무시니더. 안 움직이네. 진짜가 가짜가?"(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자 모형물인줄 착각한 관람객도 더러 있다.)

암컷호랑이
관람객들이 잠이 든 호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으르렁거리야지."(호랑이가 마음먹고 으르렁거리면 예상치 못한 실례를 범할지 모른다. 실제 호랑이는 '어흥'은커녕 '드르렁' 정도로 소리를 내는데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드르렁' 소리를 들은 직원들의 말로는 오토바이 시동거는 소리와 비슷했다고 한다.)

"이건 왜 계속 자노? 자세도 안 바꾸고 계속 누워있네." (시베리아, 만주 등 겨울에 익숙한 호랑이들은 여름이 힘겹다.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편히 쉰다.)

"어, 일났네." (한 마리가 상체를 세우고 앉아 고양이처럼 털 치장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수목원 방문자센터에서 바라 본 춘양목1교.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암컷호랑이 '한청'이 잠시 일어나 관람객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아까부터 자는 일어나 있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여전히 누워 있다.)

"니는 와 안 일나노." (순간 누워있던 한 마리가 실눈을 뜨고 관람객들의 눈과 마주친다. 오금이 저린 듯 관람객 일부가 뒤로 물러선다.)

"저거 몇 살쯤 됐겠노?" (수컷 '우리'는 7살, 암컷 '한청'은 13살. 사람 나이로 환산하려면 4를 곱하면 된다.)

"점심시간인데 야들 밥은 뭇나?" (호랑이들의 식사는 1일 1끼니로 소고기와 닭고기 등 총 5kg을 사육장 안에서 먹는다.)

◆수목원 자유 관람 코스로 걸어보니

(방문자센터→약용식물원 옆 잣나무숲길→돌틈정원 옆 소나무숲길→고산습원→호랑이숲→자작나무원→암석원→전망대숲길→만병초원→진달래원→단풍식물원→사계원→거울연못→꽃나무원. 2시간 코스)

수목원의 시작은 방문자센터다. 쉽게 말해 매표소와 식당이 있는 곳이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이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다. 평일에는 어르신,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주로 찾는다는 게 수목원 측 설명이다. 노약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건강 사정에 맞게 자유롭게 코스를 짤 수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오신 어르신도, 돌이 안 된 아기도 빠뜨리지 않는 코스가 '호랑이숲'이라고 했다.

트램이 백두대간수목원 주요 지점을 운행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백두대간수목원 방문자센터에서 바라 본 춘양목1교.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방문자센터를 나서 춘양목1교를 건너면 수목원이 시작된다. 등산화나 등산복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스니커즈 정도로도 충분하다. 흙길이 있더라도 우드칩을 깔아둬 질퍽거리지 않는다. 등산화 신은 사람은 대개 수목원 직원이다.

볕이 뜨겁다면 출발지에 있는 우산을 활용하자. 비 막이 용도라기보다 햇볕 막이 용도다. 사방으로 햇볕을 가려주는 모자를 준비해 가는 게 가장 좋다.

물을 챙겨왔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안 갖고 왔다면 트램출발역 앞 편의점에서 사서 가는 게 좋다. 넓디넓은 수목원 내부에는 식수대가 없다.

백두대간수목원 소나무숲길.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트램이 백두대간수목원 주요 지점을 운행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트램은 15분 단위(주말 10분)로 운행한다. 시속 20km 속도로 살랑바람을 만끽하는 드라이브가 일품이다. 트램은 콜택시처럼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는 건 아니다. 긴히 필요한 사람이 호출할 경우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골프장 카트가 즉시 출동한다. 구급차 역할이다. 무릎이 좋지 않은 이들은 짧은 구간만 걷되 웬만하면 트램으로 일주하길 권한다.

태양을 피하려거든 숲길을 추천한다. 수목원은 휴양림 역할도 겸한다. 널린 게 나무고 숲이다. 잣나무길, 소나무길 등 짧은 숲길이 여러 군데 있다. 조성해놓은 숲길을 다 합하면 1.5km 남짓이다. 걷다 힘들면 카트를 부르겠다는 생각으로 숲길로 가선 곤란하다. 카트도 숲길로는 진입하지 못한다.

백두대간수목원 만병초원.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백두대간수목원 소나무숲길.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대개 트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는 곳은 '단풍식물원'부터다. 단풍식물들이 관람객을 반겨야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다.

놀이공원 '빅3'에 비유해 수목원에서 놓쳐선 곤란할 3곳을 꼽는다면 '만병초원'길이다. 만병 치유에 활용된 풀무더기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실외임에도 온도계 온도가 32도에 멈춰 가장 시원한 곳이다. 바람길은 아니지만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준다. 향도 좋고 그늘도 시원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백두대간수목원 만병초원.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아이돌 그룹으로 치면 센터 역할이나 마찬가지인 '호랑이숲'은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에 비해 개체수는 적지만 호랑이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는 곳이다. 수목원 관람객의 90%가 호랑이를 보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는 방학숙제 겸 체험을 위해 곤충과 식물을 보러 온 학생들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들 역시 호랑이숲은 빼먹지 않는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의 힘은 강력하다. 어른도 아이도 이곳에선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야행성 호랑이가 계속 자든 말든 호랑이가 일어나길 2시간씩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굳이 그러기보다 호랑이가 움직이는 걸 보고 싶다면 호랑이 출근시간인 오전 9시 40분에 오거나 퇴근 시간(오후 5시, 19일까지는 오후 7시쯤)에 맞춰 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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