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폭염과 건강 불평등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층 구석방 송 씨, 어제 죽었어. 복지관에서 쌀을 가져와 올라갔는데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그만……"
3주 전 대구의 한 쪽방에 들렀을 때 이웃 아주머니가 전해준 말이다.

"지난주 왔을 때 아저씨가 김치를 좀 구해달라고 하셨어요. 방에 냉장고도 없는데 괜찮겠냐 했더니 김치는 상해도 볶아먹으면 된다고 하셔서 오늘 구해왔는데..."
쪽방 상담소 직원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1평 남짓한 쪽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찜통더위와 맞서던 아저씨가 사망한 날 대구의 한낮 수은주는 38도였다.

쪽방 같은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온도에 장시간 노출되면 신체의 방어 기제가 무너져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부실한 식사로 인한 영양결핍은 쪽방 주민들을 폭염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병원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자 대한예방의학회는 지난 5일 이번 폭염을 '공중보건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정부의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700명 이상이 사망한 1995년 시카고 대폭염을 미국 질병 예방센터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에어컨이 없어 폭염을 피할 수 없었던 빈곤층 주민들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폭염에 가장 취약했다.

이번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만 벌써 47명에 달한다. 환자 분포를 분석해보면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온열질환 발병률이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4배나 높았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는 불공평하다. 폭염이 누군가에게는 '더운 날씨'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문제'다.

'모든 사람은 음식, 옷, 집, 의료, 필수적 사회 서비스 등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건강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세계 인권선언문이다. 그런데 '건강할 권리'가 부유한 자에게는 있고 가난한 자에게는 없다면 '인권사회'라 할 수 있을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취약 계층을 위한 폭염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혹서기 1~2개월 동안 폭염을 피해 24시간 거주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쪽방촌 인근에 마련해야 한다. 취약 계층의 특성에 대한 배려 없이 설치해 접근이 어려운 '무더위 쉼터'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아울러 취약 계층의 '사회적 고립'을 막아야 한다. 7월부터 쪽방 상담소 직원들이 대학생 봉사자와 함께 '얼음 생수'를 짊어지고 쪽방촌을 방문하고 있다. 폭염에 지친 쪽방 주민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다. 이런 헌신적인 보살핌에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
4년 뒤 시카고에 다시 폭염이 찾아왔지만, 정부와 시 당국의 노력으로 인명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여러 곳에 '쿨링 센터'를 설치하고 취약 계층 3만여 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건강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3주 전 아저씨의 슬픈 소식을 들었던 쪽방을 나설 때, '얼음 생수'를 전해드렸던 반대편 쪽방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더운데 고마워. 다음 주에도 꼭 올 거지?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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