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승업 동자세동(童子洗桐)
오원(吾園) 장승업은 비상한 기억력과 함께 타고난 그림 재주를 바탕으로 청나라의 여러 화풍을 수용하여 산수, 인물, 영모(翎毛), 절지(折枝) 등 모든 그림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화원(畫員)이었다. 장승업이 활동했던 시기는 중국과 한국의 화단에서 모두 복고주의와 작가의 창의성을 동시에 표방했기 때문에 앞 시기 대가들의 화법이나 필의를 모방하거나 고사(故事)를 주제로 하는 그림들이 크게 유행했다.
이 그림은 중국 원나라 문인이자 화가였던 예찬(倪瓚, 1301-1374)이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이 무심코 뱉은 침이 오동나무에 묻자 손님이 돌아간 후 동자로 하여금 오동나무를 깨끗하게 씻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조금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았던 예찬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인데, 이후 중국 고사인물화의 인기 있는 소재가 되어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중국 고사를 즐겨 그렸던 장승업 역시 이 소재를 여러 차례 그렸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동자는 탁자를 딛고 올라 오동나무를 닦다가 주인을 바라보고, 주인은 평상에 걸터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다. 예찬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지만 갸름한 몸집과 마른 얼굴에서 그의 기벽(奇癖)하고 개결한 성품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평상에 놓인 책과 서화 두루마리, 다관(茶罐)에서는 그의 품격 있는 일상을 읽을 수 있다.
화면 구성, 인물 묘사, 세련된 색채 감각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세련되고 능숙한 구도와 구성, 선묘와 채색에서 장승업 인물화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이다. 사람들이 장승업을 '조선왕조 최후의 거장'(巨匠)이라 부르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도상이나 기법의 측면에서 임웅(任熊, 1823-1857), 임이(任頤, 1840-1895)와 같은 청나라 말기 상해파(上海派) 화가들의 인물화풍과 닮아있어 신선함이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장승업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미감과 취향으로 해석할 부분이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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