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성성 위기, '테스토스테론 렉스'

부제=남성성 신화의 종말

테스토스테론 렉스/ 코델리아 파인 지음, 한지원 옮김/ 딜라일라 북스 펴냄

테스토스테론 렉스
테스토스테론 렉스

21세기 남성이 숨쉴 틈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는 더 그렇다. TV토론 프로그램이나 공공적 성격의 세미나 등에서 남성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부 용기있는 마초 남성들조차 '소나기가 올 때는 잠시 피해야 한다'며 여성들이 있는 자리는 일부러 피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멍 때리고 있는 척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성매매, 출산 등과 관련해서 말다툼이 생길 때, 페미니스트 여성 한 명이 나서서 성차별에 관한 명분을 갖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다음 할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블랙아웃'(머리 속 암흑)이 찾아온다. 시대가 이렇듯 마초적 생각을 갖고 있는 남성들이 먼저 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을 수상한 이 책은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인가'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의 눈으로 들여다 본 젠더 차이의 과학적 근거를 들어 '차이'를 말하면서 '차별'을 정당화하지 말라는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의 저자인 코델리아 파인(캐나다에서 태생, 영국에서 공부, 호주에서 활동)은 '뇌 마음대로', '젠더, 만들어진 성' 등 대중적인 과학서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친숙하다. 남녀간의 성대결로 시끌벅적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서적이다. 저자는 진화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내분비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근 연구들에서 가져온 풍부한 지식과 과학적 근거에다 흥미로운 개인적 일화와 사례들을 곁들여 '테스토스테론 렉스'라는 강력한 남성성 신화를 깨부순다.

21세기, 남성성 신화가 종말을 위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 여성성을 앞세워 파격적인 패션과 콘셉트를 선보인 가수 데이빗 보위.
21세기, 남성성 신화가 종말을 위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 여성성을 앞세워 파격적인 패션과 콘셉트를 선보인 가수 데이빗 보위.

이 책의 제목은 곧 멸종할 남성성 신화를 암시한다. 지금은 멸종했지만, 한 때는 육식동물의 최강자로 꼽혔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일명 T-렉스)를 떠올리는 용어다. 저자는 학술적·대중적 담론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사고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는 성 본질주의적 관점을 지칭하기 위해 차용한 것이다. 테스토스테론 렉스는 남자와 여자가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여자에게는 없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사고방식은 숫사자의 멋있는 털이나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 깃털이 생존에는 불리하더라도 생식에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진화에 성공한다는 성 선택 이론의 기본 가정을 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내버려 두자는 것이다.

저자는 테스토스테론 렉스를 철저하게 깨부순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설명은 명쾌한 논리인 듯 보이지만 그 결론의 도출과정에는 군데군데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의 문란함에 대한 다른 기준 그리고 남성은 위험감수를 선호하는데 반해 여성은 회피한다는 확증 편향 등이다. 이 책은 1부 과거(멋쟁이 파리, 백 명의 아기라고, 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2부 현재(여자는 왜 좀 더 남자 같을 수 없는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샌님, T-렉스의 호르몬적 본질, 리먼 시스터즈 신화) 3부 미래(잘 가라, T-렉스)로 구성돼 있다. 32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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