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신명여학교 제 10회 졸업생인 故 김학진 할머니가 1919년 3월 8일 만세시위에 대해 1992년에 작성한 친필 회고록 일부를 정리한 내용이다. 김 할머니는 당시 14세로 3.1운동에 참여했고 2002년 97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3.1운동 때 내 나이는 14세였으며 신명여학교 1학년 3학기 때였다. 당시 교내는 이상하게도 술렁술렁하기 시작했다. 여기 가도 만세 이야기, 저기 가도 만세 이야기뿐이었다. 하루는 상급생 언니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일제의 압제 밑에 있는 우리나라를 자주독립하는 것이 급선무요, 우리의 살길이니 우리도 이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는 우리들의 마음엔 뜨거운 열정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우리는 기숙사 이 방 저 방을 쫓아다니면서 태극기 만들기와 그날에 입고나갈 의복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치마는 끈을 어깨에 걸치도록 만들어 준비하라는 특별지시를 받았다. 그날에 나가서 만세를 부르면서 달리며 뛰어가는 데 안전하기도 하려니와, 일경들에게 체포당하면 어떠한 악형과 모욕을 당할지 모르니 꼭 어깨허리를 달아 입으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태극기를 크게 만들어 의복 가슴에 매라는 것이었다.
3월 8일 약속의 날은 왔다. 기숙사를 빠져나가 약속 장소까지 가는 것이 큰 문제였지만 언니들의 기지로 대야에 세수수건을 담아 가지고 빨래하러 가는 모양으로 학교를 빠져나가서 개천에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대야는 개천바닥에 던져버리고 뛰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벌써 많은 인원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행렬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함께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 인근 주민, 계성·신명학교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장엄한 행렬이 됐다. 행렬은 얼마 후에 대구경찰서에 당도했다. 거기서는 행렬을 멈추고 있는 힘을 다해서 경찰서가 떠나가라는 듯이 땅이 꺼져라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불러댔다. 천지는 진동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얼마동안 만세를 부른 후 종로를 지나 동성로 한가운데 이르렀을 쯤이다. 난데없이 말을 탄 병정들이 수도 없이 우리 가운데로 들이닥쳐 행렬을 이리저리 분산시키고 말았다. 우리들은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계속 만세를 불렀지만 군경이 합세해서 닥치는 대로 우리를 포승으로 결박해가지고 어디론가 끌어갔다. 그 중 청년들은 말단 병졸에 손을 번쩍 들어 자진해서 묶여가는 모습도 보였다.
군중 틈에 낀 내가 너무 어려 보였는지 군경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만세운동에 나오기로 결심할 때에는 일경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갈 것을 각오하고 나온 바인데 잡아가지도 않으니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데 우리 상급생 이인숙 언니가 내 손을 끌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보호해줬다.
이후부터는 검문검색이 심해서 외출도 못하고 있는 동안에 들리는 소문은 굉장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많은 동포들이 체포돼 감옥에 들어갔고 우리 학교 선생님과 학생 다수가 잡혀 들어가서 학교는 휴교가 됐고 기숙사는 다 비어있는데, 보모어머니와 몇몇 분들이 감옥에 사식해서 들여가기에 바쁘다고 했다.
나의 할머님과 어머님은 어린 것이 그 인파 속에 들어가 뛰며 달리면서 만세를 불렀으나 밟혀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감사하다고 반가워하셨으나 나의 아버님께서는 후에 말씀하시기를 감옥에 안 들어가고 왜 피해왔느냐고 꾸지람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나 자신도 생각하면 더욱 용기를 내어 손을 쳐들고 자원해서라도 잡혀가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옥고도 좀 겪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때때로 일어나고 있다.
그 당시 우리 삼천리강산은 대한독립만세의 우렁찬 소리로 들끓고 있었다. 우리 이천만 동포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애국의 열정이 용솟음쳤던 것이다. 기후에도 우리 애국지사들은 재산도 생명도 아끼지 않고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계속 몸 바쳐 활약했기 때문에 독립을 맞았음은 우리가 다 잘 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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