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권의 격언(?)이 있다. 의혹에 휩싸인 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한 상대방을 '피장파장'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면, 지켜보던 관중들은 비판의 내용보다는 누가 더 나쁜가를 판가름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다.
최근 잇따라 보도한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이하 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의 취재 과정도 그랬다. 대구패션조합은 2000년대 중반 공금 유용으로 일부 구성원이 법적 처벌을 받고 와해된 뒤, 2011년 재건된 협동조합이다. 과거 전철을 밟지 않고자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지던 사업비 집행 규정과 원칙은 지난해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출근하는 이사장은 직원의 제안이나 결재 요청을 검토한 뒤 서명을 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조합 업무의 전권을 장악한 건 조합 실무 책임자였다. 해당 책임자는 자신에게 반발하는 직원이나 조합 회원사 대표들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업무를 좌지우지했다.
취재 초기만 해도 각종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던 그는 기사 게재를 며칠 앞두고 태도를 바꿨다. 자의적으로 고발자로 추정한 이들을 상대로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자에게도 "모욕감을 크게 느낀다, 허위 사실을 말한 제보자가 누구냐, 거짓허위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의 본분이냐"고 따졌고, "허위 기사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으로 법적 대응하겠다"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그가 배포한 '해명자료'에는 정작 '해명'은 없었다. 대신 "수년 연속 일감을 가져간 업체가 다른 초보 업체에 일감을 뺏기자 밥그릇 싸움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명'에는 과거 대구패션조합 행사를 맡았던 수도권의 패션쇼 업체들이 대구시의 지원 예산 축소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입찰을 포기하면서 응찰 업체 자체가 줄었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이 해명을 두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수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도 태무심했던 대구시의 반응도 비슷했다. 대구패션조합을 담당하는 대구시 섬유패션과는 '국비 횡령' 의혹을 아직 벗지 못한 인물이 대구패션조합 국·시비 사업 수행 담당자로 이직하도록 방치했다.
더구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오히려 전·현직 직원들을 상대로 제보자 색출에 나서기까지 했다. 대구시는 의혹 당사자들을 상대로 해명 취재가 시작된 지난 9월 이후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보도 이후에야 느릿느릿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의혹 수사에 관심을 보인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 대구시의 태도에 비춰볼 때 자체 감사 결과에 수사기관 고발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면서 "차라리 감사원이 나서거나 검·경 등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대구패션조합과 대구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메신저의 허물과 법적 책임을 지적하는 식으로 입막음까지 시도했다. 숨겨야 할 비밀이 있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자신의 허물을 타인이 묻지 못한다 해서 그 허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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