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헬스케어 산업 개척하고 병원장직 성공리 마무리한 전상훈 전 분당서울대병원장

전상훈 전 분당서울대병장. 이무성 객원기자
전상훈 전 분당서울대병장. 이무성 객원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찾아갔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전상훈(60) 병원장(그는 인터뷰 직후인 30일자로 퇴임하고 흉부외과 교수로 돌아갔다)의 집무실. 병원을 중심으로 인근 곳곳에 병원과 연계된 각종 시설이 표시된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03년 개원한 분당서울대병원은 병원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지면적 4만5천728㎡(약 1만3천832평)에 이르는 지하 4층~지상 7층 규모 옛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4월 국내 최초로 병원이 주도하는 헬스케어혁신파크의 문을 열었다.

헬스케어혁신파크에는 유전체 분석업체 마크로젠, 조직·장기 재생·세포치료 업체 한국줄기세포뱅크,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를 생산하는 이오플로우 등 31개에 이르는 제약 바이오·의료기기 기업과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입주기업들은 입주 첫해인 2016년 매출 7천986억원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매출 1조1천928억원을 기록, 3년 만에 50% 가까운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첫발을 뗄 당시 240명이던 입주기업 근로자도 지난해 484명으로 늘었다.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창업한 기업 3곳도 입주해 있다.

병원과 헬스케어혁신파크를 연결하는 길이 190m의 지하 터널까지 완공되면서 거리도 가까워졌다. 병원과 벤처기업 관계자들이 더 자주,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분당서울대병원의 혁신은 대구 사대부고·경북대 의대를 나와 흉부외과 교수로 이름을 날렸고 지난 5월말까지 3년가량 재임한 전상훈 직전 원장이 주도했다.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에 왔고 3년 전 병원장이 된 그는 약 주고, 수술만 하는 병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소매를 걷어부쳤다. 전 전 원장은 산업이 융합시대에 병원도 4차산업혁명시대에 맞는 혁신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병원 내 구성원들을 설득하며 새 길을 냈고, 이제 큰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을 보니 병원을 넘어 의료산업 클러스터로 가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기업이 아니라 병원이 주도해서 의료산업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모두가 생각했던 기존 병원의 역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환자에게 약 처방하고 수술하는 진료 행위만으로 앞으로 병원이 살아남을 수 없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도입된 4차산업혁명시대에서 정밀의료와 예측의료라는 과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병원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의료의 변화는 기업이 아닌 병원이 주도해야 한다. 나는 병원의 역할 변화에 주목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병원이 주도하는 산업·대학·연구소·정부기관 융복합 헬스케어 연구 클러스터인 '헬스케어 혁신 파크'의 문을 열게 됐다.

- 헬스케어 혁신 파크는 어떤 곳인가?

▶헬스케어 산업은 병원이 주도해야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료인과 수요자인 환자가 만나는 공간인 병원은 헬스케어 시장에 있어서 글자 그대로 '현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은 새로 개발하는 물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를 현실화시켜줄 수 있다. 개발하는 과정은 물론, 판로 개척과 지적재산권 획득까지 전주기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곳의 장점은 병원이라는 공간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협동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료기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것이 물건이 될 사안인지, 아닌지를 의료진들이 빠르게 판단해 줄 수 있다. 결국 의료기기를 만들든, 신약을 개발하든 엄청나게 많이 찾아올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 곳의 최대 장점이다.

-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엉뚱한 생각이라는 지적도 있었을텐데?

▶약 8년 전부터 나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의료인들이 사회적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냥 웰빙족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헬스케어 시장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전세계 시장 점유율이 형편없다. 2%도 안된다. 그런데 자동차나 조선산업 같은 경우는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시장 점유율이 꽤 높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의사들도 이 부분에서 세계 시장과 경쟁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버드대 등 세계를 둘러보니 의료인들이 헬스케어 산업에 도전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였다. 나는 의료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헬스케어 산업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봤다. 헬스케어 산업을 하기 위해 병원이 LH 본사 사옥을 매입해 헬스케어 혁신파크를 만든다는 것은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모든 구성원들을 설득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3년만에 입주기업의 매출이 50%나 늘었다.

- 넘어서야 할 벽도 많았을텐데?

▶물론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모두 찬성했을 리가 없다. 엄청난 투자를 하는 사업인데 내부 구성원들이 동요하지 않을 리 없었다. '투자를 많이 하면 경영안정에 걸림돌이 생길 수 있다'는 식의 비판도 많았다. 과학적으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들을 보여주며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구성원들이 다 좋아한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결국 기존에 갖고 있었던 의사라는 직업 개념을 우리는 변화시켰다. 헬스케어 산업을 주도하는 영역에서 의사의 역할이 새로이 나타난 것이다. 기업들이 진입해 오고, 우리 의대 교수들이 창업을 하고 있다. 입주기업들의 직원 숫자가 2배나 늘었고 우리 병원 직원 900여명이 핼스케어 혁신파크에서 일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형태의 헬스케어 혁신파크가 우수한 의료 인력 배출이 많은 대구경북에서도 가능할까?

▶물론이다. 대구경북 의료인들도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당연히 헬스케어 산업에 진출해야하고 대구경북에서도 가능하다. 대구경북 의료인들이 지역 상공인들과 많이 만나고 교류하고 벤쳐기업가들과 소통해야 한다. 나는 지금 대학에 있는 산학협력단 같은 조직을 병원과 산업이 연계하는 산병(産病) 협력단의 형태로 만들 수 있게끔 제도 마련을 시도해왔다.

이렇게 되면 교수창업이나 연구인력 활용에 있어서 매우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특히 의대 교수들이 사회공헌적 시각도 이제 가져야 한다. 대구는 지식도시다. 교육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대구도 할 수 있다.

-대구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대구에서도 교수로 있다가 이 곳으로 왔는데 서울과 지방의 의료격차, 존재하는가?

▶대구에도 잘하는 전문가가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무조건 서울로 갈 필요는 없다. 특히 대구는 역사가 있다. 그런데 서비스 수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또 앞으로는 의료기관의 데이터 공개가 중요해진다. 이 부분에서 대구경북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 데이터 공개는 어떤 의미인가?

▶진료의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통계가 있어야 한다.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내세울 수치가 있어야 될 것 아닌가? 분당서울대병원은 지난해 '아웃컴(outcome) 북'을 냈다. 병원의 치료성적표다. 치료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각종 지표를 책자를 통해,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말 뿐만 아니라 영문으로도 냈다. 국내 처음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실현시키기까지 강력한 저항도 있었다. 성적표를 안 내놓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한 반발이다. 왜냐하면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은 다른 진료 분야에 비해 위험도가 더 있다. 나는 설득했다. 그래도 공개하자고 했다. 우리 병원이 중증질환자를 주로 보는 3급 의료기관인데 당연히 합병증 등이 많다. 지표를 보는 사람들도 이해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부분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혁신의 상징이자 새로운 문화와 시스템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병원이다. 개방성과 열린 조직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

- 의대 교수들의 혁신, 변화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변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흉부외과 교수인데 흉부외과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수술 기법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절개를 했다. 최근엔 복강경, 내시경으로 발전했다. 과거엔 무조건 치료 위주였다. 이제는 조기 진단이 중요해졌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예방과 예측 위주로 가고 있다. 예측치료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로 무장해야 한다.

의대 교수들은 교육자 아닌가? 가르치는 교육자부터 바뀌어야 학생들도 바뀔 것 아닌가? 생명공학 융합대학원으로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융합의 시대다. 심지어 의대 교수들이 인문학과 예술도 알아야 한다. 모두 엮여 있다. 과거 최고의 인재들이 공과대학에 몰려 오늘의 IT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듯이 최고의 인재가 의료로 몰리는 지금이 헬스케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 앞서 서울과 지방의 의료격차에 대해 언급했는데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의료 수준 격차는 있다고 보는가?

▶ 환자를 보는 실력은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낫다. 미국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직접 의료 수준은 세계적 경쟁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연구에 있다. 기초연구 분야에서 미국이나 일본에 많이 뒤진다. 새로운 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기초의학 인프라가 많이 부족해 따라가기가 힘들다.

- 지석영 연구소를 최근 개소했는데 기초의학 인프라 수준을 높여줄 꼭 필요한 시설인가?
▶ 헬스케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동물실험 등 비임상 연구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시설이나 연구 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기관과 제약사 등이 해외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실정이다.

이번에 문을 연 지석영 의생명연구소는 설치류가 7만5천 케이지, 중동물이 230 케이지, 대동물이 50 케이지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크다. 동물 수술실이 4개나 된다. 대동물 생존을 위한 중환자실도 있는데 거의 일반 환자를 보는 수준이다. 7테슬러 MRI와 PET 및 방사선 동위원소 촬영까지 가능한 영상실험구역까지 갖춘 최첨단 비임상 시험 시설이다.

이런 시설을 이용해 의료기기와 신약을 테스트한다. 동물들이 많지만 냄새도 안나는 첨단 시설이다. 메르스 등 감염질환도 연구가 가능한 수준을 의미하는 '동물이용 생물안전 3등급(ABSL3)' 연구 시설을 갖춰 국민 안전을 위한 감염병 연구가 가능해졌다.

-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환경들이 바뀌어야 하나?

▶지금 규제가 너무 많다. 현재 포지티브 규제가 개선되어야 한다. 안되는 것만 규정하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귀어야 한다. 법안을 시급히 정비해서 적용해야 한다. 이웃나라 중국을 보자. 건강중국 2030 프로젝트를 만들어 엄청난 재원을 이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헬스케어 산업은 취업유발계수가 매우 높다. 우리나라가 지금 일자리가 없어서 매우 어려운 지경인데 헬스케어 산업이 활성화되면 청년과 여성, 고학력 일자리 2만여 개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고의 IT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또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다. 이 두 분야가 융합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지금 그 기회가 우리 앞에 와 있다.

-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후학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늘 대구 영남고 학생들이 왔었다.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줬다. 무엇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식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도 원래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의료인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다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어떤 학문을 했든지 간에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직접 경험을 하기 어려우니 책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이웃집에서, 이웃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계속해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했던 학문을 끊임없이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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