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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골쪽방·연탄난방…겨울이 더 추운 에너지 빈곤층

대구의 에너지 빈곤층…코가 시린 쪽방과 매캐한 연탄 난방, 찬 바닥 노숙 등
에너지 빈곤층 대부분 에너지복지 제도 잘 모르고, 지원받더라도 부족한 상황

11일 밤 대구역 대합실에서 노숙인들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1일 밤 대구역 대합실에서 노숙인들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따뜻한 겨울도 에너지 빈곤층에겐 혹한기다. 필요한 만큼 난방을 하지 못해서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빠듯한 살림 탓이다. 에너지바우처 등 에너지복지 정책이 있지만 사각지대가 넓다. 현장에서 이들을 지켜본 활동가들은 수혜자들이 원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냉골 쪽방과 연탄 난방으로 버티는 사람들

10일 오후 3시쯤 대구 동구 동대구역 인근의 한 모텔. 작은 원룸 크기 정도로 보이는 방은 두 사람이 앉자 꽉 찬 듯했다. 방안은 어떻게 정리하든 정리된 것처럼 보이긴 힘들 듯 했다. 대낮임에도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워 주변 사물을 뚜렷이 보기 힘들었다. 부동산업계에서 이른바 '쪽방'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겨울이면 쪽방은 한층 더 춥다. 방문을 열자 들숨에 한기가 몰려들어왔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았고 창문에 발린 문풍지는 너덜거리며 칼바람에 버티고 있었다. 벽은 냉동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A(60) 씨의 난방도구는 전기장판이 유일했다.

A씨는 "시설이 낡아 겨울이면 습기가 쉽게 찬다. 전기난방이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행정기관의 연료비 지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에너지바우처'라는 말을 물을 때는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대구시내 쪽방 거주자는 797명. 재개발로 기존에 있던 쪽방 건물 대부분 없어지면서 현재는 여관이나 모텔에서 월세 생활자로 지내고 있다.

대구의 일부 노후 단독주택 주민들은 연탄 난방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연탄쿠폰 등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긴 겨울을 보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주민이 연탄 난방을 하는 모습. 매일신문 DB
대구의 일부 노후 단독주택 주민들은 연탄 난방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연탄쿠폰 등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긴 겨울을 보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주민이 연탄 난방을 하는 모습. 매일신문 DB

같은 날 오후 찾아간 대구 서구 비산동 B(66) 씨의 집. B씨의 다섯 식구는 연탄보일러로 겨울을 나고 있다고 했다. B씨가 하루에 사용하는 연탄은 모두 8장. 겨울을 나는 동안 1천 장 가까이 필요하다. B씨는 "겨울에는 한 달 생활비의 3분의 1을 난방비로 사용한다. 연탄 후원을 일부 받지만 1장에 800원인 연탄가격이 부담"이라고 했다.

같은 동네의 홀로 사는 노인 C(79) 씨는 연탄을 사기에 빠듯한 살림에, 허리까지 불편해 겨울나기가 여간 벅차지 않다. C씨는 "따뜻한 물이라도 쓰려면 일일이 물을 데워야 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대구시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대구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3천117곳이다. 같은 해 연탄쿠폰 지원을 받은 가구는 1천537곳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연탄 난방 가구가 몰려 있는 곳은 중구 동인동과 서구 비산동, 북구 고성동과 복현동, 수성구 파동 등이었다.

◆홑이불이면 감지덕지

10일 0시 대구도시철도 1호선 반월당역 지하상가에선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찬 바닥에서 노숙하는 10여 명의 사람이 몸을 뒤척이며 내는 기침소리였다.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고 상가 간판에 불이 꺼지자 하나둘씩 나타나 잠자리를 폈다. 종이상자나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 뿐이었다. 때가 끼어 반들거리는 옷을 입은 노숙자들은 잔뜩 몸을 움츠렸다.

대구역 대합실에서 노숙인들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역 대합실에서 노숙인들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 지하상가 상황도 비슷했다. 2년 전부터 이곳에 이부자리를 펴온 D(56) 씨는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노숙인 쉼터에서 해결하고 밤이 되면 대구역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D씨는 "쉼터에는 인원이 다 차서 잠은 길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반월당역과 대구역 등 지하상가는 노숙인들의 '추위 대피소'다. 이들은 오후 11시 30분쯤 도시철도 마지막 열차가 끊기면 모여들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는다. 자정을 갓 넘은 시각 반월당역과 대구역 등 2곳 지하상가에서 잠든 노숙인은 어림잡아 30명. 이들이 사용하는 난방용품은 홑이불과 종이상자가 전부였다.

대구시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대구시가 확인한 노숙인은 286명. 쉼터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은 151명이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노숙인 쉼터가 있지만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 밖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에겐 침낭이나 응급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에너지복지의 사각지대

이 같은 에너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복지정책이 '에너지바우처'제도다. 기준 중위 소득 40% 이하인 가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5세 이하의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등을 포함하는 가구에 지원하는 연료비다.

대구의 경우 2018년 에너지바우처 지원 가구가 3만5천120곳, 지원액은 36억원이었다. 가구당 8만6천~14만5천원 수준의 지원이다.

문제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적잖다는 점이다. 진입 문턱이 있는 데다 홍보가 안 돼 혜택 받을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원을 받더라도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앞선 B씨의 사례처럼 겨울철 연탄을 하루 8장씩 필요로 하는 가구에는 한 달 간 사용되는 연탄에만 20만원의 연료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기에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온다. 수성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E(76) 씨는 "지난해 모두 8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이마저도 여러 번 나눠 받았다. 한 달에 2만원 정도였는데 난방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난달 '겨울철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를 통해 ▷에너지바우처 신청에 필요한 정보와 안내 부족 ▷적은 지원금과 비교해 복잡한 행정 절차 ▷집주인 동의 없이 진행이 어려운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등 에너지복지 정책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지원금이 부족하다는 걸 듣고 정부 예산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에너지바우처 대상자 집으로 직접 찾아가 제도를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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