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득신(1754-1822), ‘강상회음’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22.4×27㎝,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종이에 담채, 22.4×27㎝,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일하다 때가 되자 모여 밥 먹고 술도 한 잔 한다. 한 손으로 술병을 잡고 다른 손으로 술잔을 들고 들이키는 분은 밥보다 술이 먼저인지? 반찬이자 안주는 둘러앉은 사람들 한 가운데 놓인 물고기 한 마리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 젓가락을 쥐지 않은 사람은 벌써 다 먹었는지, 차례를 기다리는지. 아니면 배탈이 났는지. 먹어야 살고, 먹기 위해 사는 삼시세끼 중 한 끼를 스냅 샷으로 포착했다.

밥 먹는 각자의 모습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고, 대 놓은 배와 버드나무는 강가 어부들의 한 끼임을 한 눈에 알려주면서, 수양버들 늘어진 여름날의 서정을 풍겨주는 배경처리이다. 작은 화면에 전달하는 내용이 많은데도 하늘과 물, 땅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여백의 운치까지 살렸다. 인물 묘사도 보통의 솜씨가 아니다. 옅은 윤곽선으로 그린 얼굴은 이목구비를 여러 모양의 점과 짧은 선들로 생기 있게 나타냈고, 몸은 스케치 풍의 빠른 필선으로 옷 주름에 강약을 주어 부피감과 운동감을 표현했다. 강과 땅, 나무를 모두 옅은 청색 선염으로 통일해 청량한 공기가 화면을 흐르는 듯하다.

정조 때 화원인 긍재(兢齋) 김득신의 '강상회음(江上會飮)'이다. 그림의 얼개는 '고씨화보'라고 줄여 불렀던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1603년)에 당나라 때 대가인 염입덕의 작품으로 실린 것을 본 땄다. 김득신은 원본에 있는 배 안의 여성 두 명은 조선의 상황에 맞추어 뺏고, 원본에 없는 휘청거리는 대나무 낚싯대와 물새를 추가해 현장감을 더했다. 물론 옷차림이나 머리모양 등은 조선식으로 바꾸었다.

중국의 역대 명가 106명의 그림을 판각한 『고씨화보』는 1609년 무렵이면 우리나라에 전해져 큰 인기를 끌었다. 화가의 전기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문인들은 돌려 보며 제화시를 지었고, 화가들은 산수, 인물, 화조 등이 망라된 교본(敎本)으로 참조했다. 겸재 정선의 다람쥐 그림, 공재 윤두서의 말 그림도 『고씨화보』에 나온다. 정선의 금강산, 윤두서의 자화상은 여기에 안 나온다. 『고씨화보』는 어떤 미술을 창조할 수 있는가를 조선에 알려준 최초의 세계명화집이었다. 조선후기 화가들의 상상력은 과거의 대가들을 동반자로 하여 높이 솟아올랐다.

김득신의 부채그림을 보고 정조가 김홍도와 백중(伯仲)한 실력이라 했다고 『이향견문록』에 나온다. 김홍도, 김득신 뿐 만 아니라 정조, 순조시대 화원들은 풍속화를 잘 그렸다. 선남선녀들의 평소 생활 모습을 그린 것이 풍속화다. 이 그림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누구도 영생할 수 없는 유한한 인생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일상의 소중함을 그림으로 환기시켜 주는 것 또한 풍속화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감염병으로 함께 밥 먹기조차 쉽지 않은 요즘은 더욱.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겪었던 추사 김정희는 생애 마지막 해인 71세 때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여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고 쓴 작품을 남겼다. "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최고의 모임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손자."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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