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기다려, 봄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산업디자인과 부교수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산업디자인과 부교수

차에서 내리며 잠시 벗은 마스크 뒤의 코끝으로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어느새 핀 진달래, 봄이 보인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빼앗긴, 봄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사태는 지인과의 식사, 마주 앉은 동료와의 회의 등 일상의 평범한 것을 가져가 버렸지만 한편으로 예기치 못한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시민들의 봉사 덕에 일손이 부족했던 마스크 공장의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나보다 급한 이웃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는 '애프터유'(After You)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타격을 입은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낮춰 주는 '착한 건물주'의 상생 릴레이 등이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고, 우리는 여전히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력들은 우리 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뜻밖의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소시민의 노력과 의지로 긍정적 사회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는 디자인 분야에도 있다.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Sara Hendren)과 뉴욕 시민들이 만들어낸 뉴욕시 장애인 마크 디자인 변경 프로젝트(Accessible Icon Project)가 그 사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장애인 마크는 국제표준(ISO)인증 마크와 대한민국 국가표준(KS)인증 마크로 이 두 종류의 마크가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에 적용되어 우리의 일상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뉴욕시 장애인 마크
뉴욕시 장애인 마크

문제는 이 마크(특히 국제표준인증 마크)가 뻣뻣한 팔과 다리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수동적 모습의 사람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마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 마크를 반복적으로 마주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로 하여금 장애인을 그 마크 속 형상처럼 수동적인 존재로 인지하게 만드는 부정적 매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인지한 사라 헨드렌은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새로운 모습의 장애인 마크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뉴욕시 거리로 나가 주차장 등의 장애인 표지판 위에 자신이 만든 마크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욕시는 그녀가 만든 마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뉴욕 시민들은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며 그녀와 함께 길거리에 있는 장애인 표지판들을 하나둘씩 바꾸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느새 뉴욕시의 길거리는 그녀의 장애인 마크로 채워지게 되었고 2014년 7월 25일, 뉴욕시는 그녀의 마크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46년 동안 유지되었던 뉴욕시의 장애인 마크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아직 이 마크가 미국 전역에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을 넘고, 미국을 넘어 각국에서 이에 동조하는 시민의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나비효과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작은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나 거대한 날갯짓으로 증폭되어 세상의 인식을 바꾸는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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