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스승의 날’을 보내며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16세기 조선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그리고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학문적인 선후배 또는 사제 관계로 편지를 통한 학술 논쟁을 이어갔다. 우리 정신사에 길이 남을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다. 극진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권위에 주눅 들지 않았던 고봉의 패기와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퇴계의 개방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영혼의 교류였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역관 가문이었다. 그러나 추사는 시와 글씨에도 능한 이상적을 예술의 후배로 학문의 제자로 삼아 인간적인 교류를 아끼지 않았다. 스승을 존경했던 이상적은 청나라를 오가며 구한 최신 서적과 예물을 들고 추사의 귀양지인 제주도를 찾았고,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추사는 한 폭의 그림을 전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찾아온 제자가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임이자 국회의원(재선)이다. 임 의원은 이 지사가 1978년 수학 교사로 첫 부임했던 상주 화령중 시절의 제자이다. 사제 간에 나란히 금배지를 단 경우도 드물거니와 선배 정치인이었던 이 지사를 늘 '의원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임 의원의 덕담도 흐뭇하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사제지간의 따뜻한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에 온기 가득한 등불 같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을 통해 성악가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트바로티 김호중의 인생 역전에도 한 사람의 스승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호중은 부모의 이혼으로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형편이 어려워 좋아하는 음악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

방황하던 비행 청소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해외 유학으로 인도해 준 사람은 바로 고교 시절 은사였다. 제자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헌신적으로 이끌어 준 결과가 또 한 사람의 특별한 스타를 탄생시킨 것이다. 누구나 가르칠 수가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넉넉한 시대이다. 그러나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드물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귀한 세태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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