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인간이 무섭고 두렵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렇다. 코로나 탓으로 밤낮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마스크는 나와 남 사이에 차단막을 만든다. 무의식중에, 서로 불안하니 경계-의심하라고 알린다.
물론 꼭 집 밖으로 나서야만 낯선 타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는 평소 바깥의 이질적인 타자와 교류하고 있다. 흔히 '호흡지간'(呼吸之間) 즉 '날숨(呼)과 들숨(吸) 사이'에 생사(生死)가 있다고들 한다. 호흡이 멈추면 죽으니 인간은 날숨-들숨 '사이'에서 살아 있다. 숨을 들이켜며 내뱉을 때를 생각해보면,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날숨(호)-들숨(흡)의 '사이'는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질 않다.
고요와 간극의 '텅 빈' 자리를 매개로 숨을 떠나보내고(=날숨) 또 맞이한다(=들숨). 이곳에서 삶의 희망이 생겨난다. 하지만 그곳은 찰나생, 찰나멸…그 무수한 낱낱의 점들로 이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나는 이처럼 호흡하는 삶에서 바깥 세계를 만나며, 경합(競合)한다. 날숨-들숨에 빌붙어 이어지는 '의식'은 등불과도 같다.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숨결의 불꽃이 '의식'이다.
경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첫 야간 비행을 하던 생텍쥐페리는 신기했던 그날 밤의 인상을 토로한 바 있다. "들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등불만이 별 모양 깜박이던 캄캄한 밤. 그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대양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고. 깜깜한 밤, 지상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생각을 품고서 부끄럽고 나약한 듯 은총으로 반짝이던 인간의 '의식'임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의식'은 인간을 창출해가는 '지성'의 밑천이다. 고종의 진료를 맡아보던 독일인 의사 분쉬는 1901년 서울에 와서 4년 남짓 고종과 민간인들에게 의료봉사를 하였다. 그가 쓴 일기 1903년 9월 26일 자에는 '수치스러운 마음을 포기한다면 이상(理想)을 악마에게 던져주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악령'을 읽고 난 뒤의 소감인 듯하다. 여기서 '수치스러운 마음'이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맹자'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 보았다.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수오지심은 '정의의 단서[義之端]'이다. 수치심이 없는 철면피의 인간은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부끄러울 '치'(恥) 자는 낯부끄러움이 귀까지 벌겋게 번진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이런 마음씨의 인간이 있기는 할까.
카프카는 글을 쓸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의 착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10년경의 일기에서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은 나의 근원에서 떠오르지 않고 내 마음의 중간쯤 어디선가에서 비로소 떠오른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삶의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글을 쓰고파 '어중간'을 싫어했다. 반면에 니체는 '처세의 지혜'를 말하면서, "평지에 머물지 말라!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말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중간 높이에서니까"라고 하였다.
삶의 지혜는 '어중간'이 좋다는 뜻이다. 맞다. 너무 높이 오르면 '농단'(壟斷)하게 된다. 농단은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斷] 언덕[壟]을 말한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하고 싶어진다. 그곳에는 반드시 '꾼'(전문가)들이 있다. 근대철학의 출발이 된 데카르트는 각 영역의 '전문가'를 타인의 정신적인 불행으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허위의 자격'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 영역의 이론과 전문연구에 대해 "사기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것이 어떤 점에서 타당한가를 인식하고 검토하려 하였다"며 경계했다.
권력은 결국 모든 정보와 기술을 장악하기에, 거대한 '허위' 즉 '주작=사기의 자격'을 손에 쥐고 만다. 이때 찰나생멸의 호흡, 그 무상함을 쳐다보며, 어중간의 지혜를 살피는 여유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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