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갈 무렵, 시청을 출입하던 기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임 도전 하십니까?" 조 전 시장이 사고 수습에 매진하느라 점심을 배달음식으로 몇달째 해결하다가 대외활동을 막 재개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답변이 뜻밖이었다. "4년도 너무 기네요."
실제로 나중에 조 전 시장은 지하철 참사 책임을 지겠다며 재선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2002년 시장에 당선됐을 때 그는 의욕에 차 있었다. 추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취임 반년 만에 터진 지하철 참사는 그의 연임 의지를 완전히 꺾어놨다. 선출직 공직자에게 대형 참사 후유증은 이렇게 크다.
요즘 권영진 대구시장을 보면 2003년 조 전 시장과 비슷한 심경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하철 방화참사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지역사회의 감당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이다. 사태를 수습하느라 공직사회가 천신만고인데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안 그래도 '고담 대구'라고 불리는 판국에 신천지 교인 집단감염으로 지역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권 시장은 전전임 시장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 그 공간에서 한달 이상 야전침대 생활을 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몰두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 상황을 맞았고 시의원과 설전 끝에 쓰러졌는데 '실신쇼' 비아냥마저 들었다. 권 시장으로서는 '노이무공(勞而無功·애썼는데 보람이 없음)' 고사성어가 절로 떠오를 법한 상황이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유치에 성공했고 난제 중의 난제이던 대구시청사 이전지도 정했지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과 취수원 이전 같은 백년대계는 지지부진의 늪에 빠졌다. 코로나19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했건만 정작 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 유치는 부산에 밀렸다. 공직사회의 매너리즘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난국 속에서 최근 권 시장이 깜짝 '협치 카드'를 내들었다.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에게 경제부시장 직을 제안한 것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전국 꼴찌 수준인 대구에서 민주당 재선 의원을 경제사령탑으로 쓰겠다는 발상인데, 두 사람 모두에게 적지않은 리스크일 터이다.
사실, 이념이 판이한 다른 당 소속 정치인에게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새누리당)가 2014년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를 신설해 이기우 전 통합민주당 의원을 임명하고, 그 뒤에 경기도 연정부지사로 바꿔 강득구 전 경기도의회 의장을 임명한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권 시장의 '홍의락 삼고초려'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홍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산자위 간사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기적 독대 자리를 가지면서 현 정부와 대구경북간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서울로 출장온 대구경북 공무원에게 국회내 자기 사무실을 사랑방처럼 쓰도록 편의를 제공할 정도로 지역 사랑도 돈독하다. 권 시장은 지난 총선 결과로 생긴 대구의 정치적 고립을 보완하는 데 홍 전 의원이 적임자라고 보는 듯하다.
제안에 대한 홍 전 의원의 첫 반응은 "권 시장의 상상력이 놀랍다"이다. 사실, 보수적 기질 탓인지 대구경북 정치권의 상상력은 척박한 편이다. 선택은 개인몫이지만 홍 전 의원은 권 시장의 상상력에 화답하기를 희망한다.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서는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 없다. 더구나 지역 발전은 소속 정당 및 이념보다 아래에 있지않은 가치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 민주당 경제사령탑이라! 멋진 상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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