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나타난 청중, 돌아온 청중

지난 24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경기도의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금지 명령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경기도의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금지 명령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국내 프로야구 중계를 보노라면 안쓰럽다. 힘차게 던지고, 달리는 억대 연봉의 프로야구 선수들 뒤에 텅 빈 관중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다음 달 10일을 목표로 관중 입장을 허용하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아마추어 스포츠 경기도 관중 없이 치르는 날이 많아지면 위기라는 말이 나오건만, 하물며 관중이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프로경기 스탠드가 비어 있다면 앙꼬 없는 찐빵의 허탈함, 그 이상일 터.

프로야구에서도 관중 입장 허용 목소리가 커지고, 공연장·영화관도 거리두기 방역 수칙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빗장이 조금씩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관중·청중·관객의 귀환이다.

코로나19로 잠시 사라졌던 이들의 재집결 조짐을 보면 막말·독설에다, 우리 쪽으로 삐라 1천200만 장을 날려 보내 '기분 더러운 꼴을 보여 주겠다'고 핏대를 세우는 북한이 떠오른다. 신문·잡지·라디오·TV는 물론, 유튜브·넷플릭스 등의 신흥 미디어까지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삐라'로 겁을 주겠다니, 그들의 화려한 험담 솜씨를 빌려 본다면 삶은 소대가리도 크게 웃을 노릇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더니, 3대 세습의 수령 체제, 강철대오를 자랑하던 지구상 유일의 무소불위 공포정권도 인민이 배고프면 당할 재간이 없고, 인민의 마음을 되돌려낼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는 요즘 목격하고 있다. 가설을 넘어 이론으로 이미 정립돼 있는 '청중 비용'(audience cost)이다.

우상화를 통해 수령을 신격화한 북한은 청중에게 돌려줄 비용을 전혀 계상하지 않는 청중 비용 0의 나라였다. 수령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 주든, 청중인 인민은 묵언수행하는 존재였고 수령의 헛발질에조차 찬사를 보내야 하는 박수 제조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불러온 국경 봉쇄는 자급자족의 지상낙원 지위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 버린 북한을 극심한 위기 상황으로 밀어넣었고, '이밥에 고깃국의 꿈'을 상실한 인민을 각성시켰다. 바야흐로 북한에도 이제 청중이 나타난(emerging) 것이다.

청중에게 돌려줘야 할 비용이 생겼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김정은 체제는 24일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매체를 총동원해 우리 쪽으로 계산서를 내미는 중이다. 옥류관 주방장을 보니 이미 오래전에 소화됐을 옥류관 냉면값까지 계산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를 적으로 돌려세우며 삐라 날리기를 통해 총화단결의 나라로 복귀시키려는 시도는 청중 비용을 0으로 재수렴시키려는 북한의 선전선동 전술이다.

문재인 정부 간판이었던 대북 유화 정책의 결과물을 목도(目睹)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대해 2018년 지방선거 때 '위장 평화 회담'이라고 비판했던 홍준표 무소속 의원(대구 수성을)은 "선거 사흘 전 막말을 했다며 이를 사과하라고 해서 부산까지 가서 시민들에게 사과의 큰절을 했다.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영구히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촛불'을 앞세워 거칠 것이 없었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여 동안 청중 비용 고지서를 생각이나 했던 것일까? 북한 비핵화는 공염불이었음이 드러난 대북 유화 정책에서는 물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 당시는 마치 무관중 경기를 벌이는 듯했다.

북한에 청중이 이제야 나타났다면, 촛불 정부 앞에서 형해화(形骸化)했던 우리나라 청중도 대북 유화 정책의 실체를 보면서 이제 돌아오고 있다. 청중 비용을 정산해야 할 결제의 시간도 다가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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