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준용 지원 위원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소련은 조용히 붕괴했다. 그 많은 핵무기와 그 많은 군대도 붕괴를 막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련은 말 그대로 총 한 방 쏴 보지도 못하고 망한 것이다. 그 원인을 놓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논쟁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소련 엘리트의 자발적 체제 포기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소련 엘리트에게 공산 체제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특권이 보장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었다. 즉 이미 균열이 가고 있는 소련 체제를 지키려다 특권을 잃는 것보다 자본주의 체제로 갈아타 자리와 특권을 지키려 한 소련 엘리트의 체제 배신이 소련의 '평화적' 붕괴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언싱커블 에이지', 조슈아 쿠퍼 라모)

붕괴 후 지금까지 구소련 지역의 정치 지도층이나 부유층 등 사회 상층부가 공산 체제 시절에도 사회 상층부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런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1999년 12월 31일 총리 겸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권좌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부터 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 엘리트 요원 출신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한 러시아 국가는 그 기능 중 하나에서 소련의 판박이다. 바로 엘리트의 이익 보장이다.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가브리엘 주크만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러시아 부의 52%가 나라 밖에 있다. 특권층에 의한 국부 유출이 구조화돼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가 연거푸 공기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을 보면서 이런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에서 1천400만 원, 파라다이스문화재단으로부터 3천만 원을 지원받았고, 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도 6천900만 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지원 기관 모두 공적·사적으로 문 정권과 연결되어 있다. 또 어떤 공기관이 문 씨를 지원하겠다고 나설지 모르겠으나, 이들 3건만으로도 문 정권에서 문화 예술 관련 단체의 기능 중 하나가 문 씨의 이익 보장이라는 의심을 할 만하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사무를 처리하는 사무위원회"라고 했다. 이 논법을 빌리면 문 정권의 문화 예술 관련 단체는 '문준용 지원 사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쯤 될 듯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