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회복하는 인간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백신 접종의 후유증이 컸다. 새벽에 찾아온 오한과 발열, 게다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는 식은땀까지. 오래전 말레이시아에서 풍토병을 앓은 이래로 이번처럼 고열이 난 적은 없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수필을 다시 꺼내 읽었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가까이 두고 보는 책이 '회복하는 인간'이다.

백신 후유증이야 치유가 예정된 고통이지만, 작가의 아들처럼 지적 장애를 수반하는 뇌 질환에는 완전한 치유가 없다. 작가는 보고 듣지 못할 거라던 의사의 진단과 다르게 갓난아기가 사물을 분별하고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뒤 "밝은 전망이라곤 전혀 없는 나날에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에 힘을 얻어가며 갓난아기와의 공생을 시작"한다.

부부는 새소리와 이름을 녹음한 테이프를 온종일 집안에 틀어놓는 방식으로 불가능하다고 예상했던 아들의 언어적인 소통을 끌어내는가 하면, 음표로 소리를 재현하는 연습을 통해 아들을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성장시킨다.

'M의 레퀴엠'이라는 곡의 탄생 비화는 특히 울림이 깊다. 10년 동안 자신을 진료해준 모리야스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들은 온몸을 딱딱하게 굳히며 전례없이 큰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 간신히 건강을 되찾은 아들은 쇼팽의 '장송행진곡'을 반복해 듣다가 곡을 하나 써내는데, 그 곡이 바로 'M의 레퀴엠'이다. 식물인간이 되고 말 거라던 아들은 어느새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과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복잡한 음표의 조합으로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가 돼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불가사의함이 우리 삶을 덮쳐왔을 때, 최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그것을 받아 안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신을 버티어 내는 것뿐"이라고 작가는 아들과 함께 걸어온 삶을 회고한다.

연일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1천500명을 넘고,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격리되는 사람들을 본다. 아플 때마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는 것은 진실한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가 담담하게 돌아보는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어떤 어려움이든 떨쳐내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노년의 작가는 단언한다. "인간은 회복하는 존재"라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곤경 속에서도 늘 회복은 일어났으며, 작가는 아들과의 공생을 통해 그 신념을 확인해 왔다고 한다.

고통과 병증, 그로 인한 불안과 고립이 납덩이처럼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시대에 삶의 통찰을 담은 글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피난처이자, 치유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가끔은 치료약보다 중요한 것이 회복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니까.

소설 '개인적인 체험'에도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시킨 작가의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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